글 쓰며 우는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내가 그러고부터다. 글 쓸 때 이미 감정은 정리된 거 아니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울 수 있느냐, 그게 다 지 연민에 빠져서 그런 거 아니냐- 했지.
막상 내가 그 꼴이 돼보니 그런게 아니던데.
울고나니 글이 더 정연해지던데.
그때 알았지, 글로 못나오는 말들이 물로 나오는구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드라마에서 저거 쓴 작가 저 씬 쓰면서 울었겠다 싶은 장면을 봤다. 띄엄띄엄봤지만 워낙 전개가 느려서 스토리는 대충 이해되는 상황, 옛남자가 찾아와 극중 이름 뭐더라 하여간 문정희를 붙잡는 기차역 씬이다. '(너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해달라'는 남자를 단칼에 잘라내는 장면. 자매의 살인사건 이후 몇년째 겨울에 머무는 그녀에게 불행은 수면양말처럼 안온하고 일상적이다. 옛남자 때문에 겨울왕국이 흔들리는 건 엘사가 와도 못할 일.
무수한 소문 속에서 진짜와 거짓말을 가려내는 일은 부질없다고,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은 건 그게 사실이기 때문 아니냐고,
외양은 망가지고 심연은 말라버렸으며
소문과 거짓말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촌구석에서 이상한 괴물로 살고 있는, 이런 나에게
이미 거짓말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나에게
뭘 말하라는 거야 이 철없는 shak뀌야...
두툼한 패딩을 온몸에 두르고 울지않으려고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돌아서는 모습에서 나는 저 악다구니를 떠올렸다. 작가는 아마 울지않았을까. 보는 사람이 이렇게 먹먹한데-
그리고 문정희, 연기 너무 좋아.
어젯밤 나는 다짐했었다. 내 즐거움을 위해 살겠다고. 최선을 다해 애를 써서 즐겁게 살겠다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즐거울 일이 한 개도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와 정처없이 나부끼는 심사를 털어놓았는데 간밤의 다짐이 무색하게 조금, 울고 말았다.
어쨌거나 나는 다짐했고, 혹시 모르지. 이따 즐거운 일이 생길지도.
없음 뭐 즐겁게 자는 걸로.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