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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Jul 16. 2020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후 네시, 냉침차 마시기 좋은 시간

몇해 전 영혼의 남매로 불렸던 선배와 의절하면서 내 인맥의 삼분의 일이 날아갔다. 예전에 '가까웠던 사람과 연을 끊으면서 인간관계의 틀이 바뀌었어요'라는 남들 얘기를 들으면 남녀간의 이별 외에 절친이랑 인연을 끊는 게 어떤 걸까 싶었다. 시나브로 연락이 희미해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오늘부터 0일'을 선언하고 돌아선 적은 없었, 아니 그럴 경우조차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선배와 그렇게 헤어졌다. 일어설 때 카페 바닥에 드르륵 밀리는 의자 소리와 함께 둘 사이의 매듭도 낱낱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갈게 선배, 그래 들어가라로 끝이 났고 8월 염천의 주택가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동안 햇볕 아래 드러난 얼굴과 팔보다 심장이 더 따갑게 데인 것처럼 홧홧 뛰었다. 다신 보지 않으리라는 다짐 하나 하는데 그렇게까지 아프고 비장할 일인가 말이다. 


선배와 헤어지고나서 연락하는 사람들의 수가 확실히 줄었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긴 한데, 내 쪽 사람들로의 선배 연락도 끊겼다. 대부분 알면서 스스럼없이 묻는다. 나도 아랑곳없이 대답하니까 괜찮다. 

그 선배 안 봐? 

볼 일은 없지


완전한 실망과 함께 둘의 관계가 젖은 흙더미처럼 폭삭 주저앉았다는 것, 선배와 내가 이렇게 끝났다는 것은 내게 큰 상처가 됐다. 어떤 상처는 벌려진 채로 벌겋게 아문다. 아문다는 건 회복한다는 건데 회복할 수 없어서 다친 적도 없는 것처럼, 추억 자체가 생략되는 거다. 그러다가도 가끔 그 날의 거리가 생각난다. 밍밍한 아메리카노와 창고 공간을 개조해 별실같던 카페와 한없이 낯설게 마주 앉은 두 사람.


얼마 전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연락 한 번 해보지 그러니. 그쪽에선 네 안부 궁금해 하던데. 

알고 있다. 

다시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고 다시 깨지기는 그보다 더 쉽다는 것을. 

우린 더이상 어느 격언처럼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할 순 없다는 것을. 


살다보면 클립을 끼워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다. 

나는 점점 근사한 추억이 생성된 날보다 마음의 갈피가 잡혀가는 날에 클립을 꼽고 싶어진다. 삶을 채워가는 건 내 안의 작은 조각들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들이지 않을까. 결핍을 받아들이는 과정 중인 오늘의 내 마음에 콕, 클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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