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통신사 뉴스1에 주1회 컬럼을 연재 중이다. 안은영의 뼈때리는 언니
처음엔 사나웠다가 점점 익숙해질 것 같은 어감의 문패다. 맘에 들어.
세 번 업데이트에, 어제 올라간 최근 글.
안녕, 언니야.
친구 왈,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성교육을 해줘야겠는데 어떤 말을 해줄지 고민이래. 언니가 남자친구와 뽀뽀하고 댕기느라 정신이 팔렸을 때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올랐어.
“만약 네 몸을 줬더라도 얽매이지 마라. 그 남자가 네 전부를 가진 건 아니니까.”
당시 엄마는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았어. 부끄럽고 민망해진 나는 벼락처럼 튀어 올라 부정했지. 가까운 존재와 내밀한 것을 공유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잖니. 신기하게도 그날의 기억은 세월이 지날수록 생생해지더라. 성교육은 내 몸의 주권이 내게 있음을 일깨우는 과정이기 때문일 거야. 이렇게 생긴 자존감은 중요한 순간마다 인생의 깃발을 고쳐 세우는 기준이 되지.
알고 하면 더 짜릿하고 안전한 걸 꼽으라면 섹스가 으뜸일 거야. 그래서 사려 깊고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해. 자칫 성범죄로 이어지니까. 놀랍게도 우리는 5대 중대범죄 중 유일하게 성범죄만은 해마다 늘어나, 10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단다(2019 경찰청 범죄 통계자료). 코로나 바이러스를 ‘K-방역’으로 막아내온 자긍심이 전 세계에 극악한 성범죄 바이러스를 퍼뜨린 손정우를 끝내 품고 말았다는 무력감으로 바뀌면서 우리 민족은 정서적 이율배반을 경험 중이지.
“싫으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된다. 알았지?”
엄마가 그날 덧붙인 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견고한 빗장이 됐어. 섹스는 안전하지 않으면 폭력이고, 온라인 성착취는 그 자체로 살인이야.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이 절망적이지만 포기하면 안 돼. 우리는 더디게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바꾸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해. 몇 번이고 강조해서 불편부당을 바꾸고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는 것,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사회적인 성교육일거야. /안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