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감상평을 적지 않을 수 없어서 브런치를 열었다.
오늘은 내가 최근 들어 읽고 본 콘텐츠 중 사랑하게 된 영화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에 대한 글이다. 지난 주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에 빠져 허우적댔다. 4일 정도 내리 이 영화만 봤는데 마침 태풍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어서 한국은 쌀쌀하고 또 축축했다. 노르웨이에 가보진 않았지만 마치 여기가 노르웨이같았다. 한번은 영화관에서, 세번은 미국의 어느 사이트에서 VOD를 사서 봤다. 영화광이 절대 아닌 내가 난생처음 영화를 VOD로 샀다. 만약 DVD가 나온다면 비록 플레이어도 없지만 살 예정이다. 기념이니까.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고 4일 동안 사랑과 성장과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는데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영화의 결말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주의! 스포 대량 함유. 영화를 이미 보신 분이 읽으면 좋습니다.
|| 주인공 율리에
주위에서는 똑순이라고 하지만 한국 부모 정서로 볼 때는 속터지는 헛똑똑 캐릭터
그냥 어떤 것이 단지 어렵기 때문에 그 일을 시작한다. 또 끝을 본다. 남들이 어렵다는 길을 굳이 택하는데, 왜냐하면 어려운 것에 에너지를 쏟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열라게 달리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불안을 낮추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막상 목적지에 도달하면? 감흥이 없어진다. 그 일을 계속 할 수 없다. 왜냐면 더이상 달려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포인트에서 여기서 나는 주인공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그녀는 단지 입학이 어려워 의대를 가기로 마음먹었고 의대에 입학한다. 의대에 가서 몸을 다루다가 인간의 본능과 진리를 찾으려면 사실 마음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또 그녀는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심리학공부도 당연히 잘했다. 그러다가 또 시들해져서 사진작가를 꿈꾼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의 전형적인 예다.
그녀 스스로는 에너지 레벨이 너무 높고 그래서 그것을 다쓰지 못하면 너무 마음이 불안해진다. 지나치게 많이 남은 에너지가 자기 안으로 향하니까 밸런스가 깨지고 위험해진다. 에너지를 밖으로 폭발적으로 소진해야 사는 사람이다. 도저히 안될 것같은 일에 열중하는 동안 그녀는 잠시 불안을 잊을 수 있고 몰입이 안정감을 준다. 그녀 스스로 이를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그냥 그녀의 에너지는 한순간 폭발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거다. 만약 그녀도 사주를 본다면 딱 불같은 사람일 거다. 온통 사주에 '불'만 있는 내가 살아온 자취랑 너무 비슷해서 이미 영화 시작 5분 만에 이 영화에 빠져버렸다.(노르웨이 사람은 자기 사주를 모르고 살겠지...)
그녀를 지나친 수많은 남자들 중
|| 첫번째 사랑/ 악셀
그녀의 아빠는 재혼을 했고 딸에게 그닥 관심이 없다. 사실 전혀 없는 것같다. 그녀의 아빠는 늘 딸의 생일을 까먹는다. 남자친구와 함께 아빠를 방문하는데 딸의 모든 생활에 대해 노관심이다. 딸을 보러 한번 오슬로에 와보시라는 남자친구의 권유에 이리저리 핑계만 늘어놓는다. 율리에는 너무 비참한 기분이 들었겠지. 남자친구 앞에서 못 볼 꼴 보인 느낌일거다. 오슬로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남자친구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문장을 고르다가 율리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되게 솔직한 편이잖아" 율리에는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겸연쩍게 웃는다. 비참한 기분에 빠져있는 율리에에게 남자친구는 손을 잡으면서 다정하게 속삭인다."너만의 가족을 만들어"
흐윽 이 장면 너무 좋았다. 모든 가족이 화목할 수 없을텐데 사랑으로 치유받는 느낌. 괜찮아. 그런 가정에서 나고 자랐어도,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어도 이제 너는 너의 가족을 꾸리면 돼. 그 가족 안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돼. 성장의 다음 스텝을 응원해 주는 연인의 모습이 가슴 찡했다.
|| 두번째 사랑/에이반드
두번째 사랑이랑도 율리에는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한다. 에이반드의 아빠는 아들의 열두번째 생일이후로 아들의 생일을 기억한 적이 없다. 첫번째 사랑/ 악셀은 그녀를 응원했다면 두번째 사랑/에이반드는 공감으로 율리에를 감싼다. 같은 상처를 꺼내고 괜찮다고 위로하는 방식.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두번째 사랑/에이반드를 처음 만났을 때를 얘기해 보자면....
에이반드는 환경보호와 요가에 심취한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극도로 자제하고 모든 것을 컨트롤 당한다. 자유로워 보이는 율리에에게 반하기 충분한 환경인 셈. 당연히 율리에에게 반한다. 사실 꼭 율리에가 아니었어도 어떤 다른 자유로운 영혼을 만났다면 그녀에게 반했을 거다. 지나치게 억압받으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
첫 만남에서 둘만의 비밀을 만드는 장면이 귀엽고 재밌었다. 둘은 자유롭고 싶었고 또 서로에게 특별해지고 싶었을 거다. 돌아이 같은 짓은 서로에게 '나는 너랑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아' 이런 해방감도 주니까 둘만의 돌아이짓은 너무나 옳지..
그리고 율리에, 친구들과 함께 재미삼아 마약을 하는데, 에이반드가 약기운이 올라오는 친구를 대하는 태도와 율리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서 웃겼다. 율리에에게는 걱정한가득. 물을 많이 마시라면서 건넨다. 속절없이 율리에는 정신이 나가버린다. 약기운에 난동을 피우고 다음날, 에이반드가 그녀를 걱정하는 장면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흑 이 부분에서 에이반드에게 완조니 빠져버린 나.. 나는 악셀보다 에이반드가 좋았다.
율리에는 그날 밤 진심으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고 공허함을 느낀다. 아. 진짜 여기서 율리에의 공허한 듯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3번째 돌려볼 때 쯤 그녀의 표정변화가 보였는데, 칸의 여인다웠다. 왜 사랑한다는 말은 하고나면 공허할까. 는 모르겠고.
일단 사랑해. 에이반드. 영화보고 반해서 헐버트 노르덤 배우님 인스타 팔로우 했는데.. 내 포스팅에 좋아요 눌렀자나...
가슴이 콩닥거려서 노르웨이행 티켓 바로 끊을 뻔 했다.
+) 이 영화를 아직 안 봤다면 꼭 봤으면 좋겠다. 오바마가 꼽은 인생 영화라는 타이틀보다 긴 머리를 니트 안으로 넣은 율리에는 너무 환상적으로 예쁘다...
++) 영화를 안봤으면 꼭 이거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칸에서 상도 받은 영화지만, 특이하게 또 OST가 없다. 한국 배급사가 아프로라는 프로듀서랑 콜라보 음원을 냈는데. 아프로 뭘까. 그는 비트를 쓰는 천재. 지난 8월 양양 기사문항에 갔을 때 나 왜 아프로를 몰랐을까. 그 때 더 열렬하게 응원해줬어야 해.
각설하고, 보자
앞으로 / 아프로 x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ZAethP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