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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employment Dec 31. 2022

2022년의 기쁨과 슬픔

한 해를 보내며

한 해 마지막을 이렇게 조용하게 보낸 적이 있나 싶다. 

항상 송년회로 사람들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술마시고 숙취를 잠깐 해소하고 또 술을 마시러가느라 혼자 담담하게 한해를 찬찬히 돌아보며 다음년도를 계획한 적은 없는 것같다. 한창 송년회와 신년회를 지나고 나서 설명절 마지막 쯤에야 한해 계획을 만들어보곤 했다. 이번에는 술을 못먹는 덕에 송년회를 모두 신년으로 미루고 반강제적으로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차분하게 한해를 보내며 감사했던 사람들에게 없는 돈 털어서 선물도 전했고 또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보냈다. 이런 연말은 처음인데 이렇게 고요한 연말도 나쁘지 않았던 것같다. 오히려 좋았다.


올해의 키워드는 [자립]이었다.

월별로 어땠는지 톺아볼까?


2022년 1월/

최악이었다. 어렸을 적 살던 동네로 자의적으로 이사왔음에도 정말 내 선택이 맘에 들지 않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너무 춥고 외롭고 힘든 겨울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혼자서 살지- 하면서 거의 매일 울다시피 보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는 괜찮은 것같았지만 늘 불안했고 진짜 혼자 살게된 느낌이 석연치 않아서 두려움에 떨었다. 요가원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해서 더 괴로웠다.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니 실제로 얼굴보는 날이 많았다. 엄마랑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엄마가 무지 신여성이라는 생각에 깜짝깜짝 놀랐다. 60이 다되어도 여전히 인간은 성장할 수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면서 재정적으로 타이트했다. 텅 빈 집을 채워야 하다보니 가전제품, 새로운 가구가 필요했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씩 채워나갔다. (당근마켓으로. 정말 당근마켓에서 우리집 사정을 알게되면 당장 앰버서더하자고 할거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걸 체감했고 백수 때보다 더욱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2022년 2월/ 

여전히 어둡고 두려웠던 시간. 끔찍한 리더랑 일하느라 정말 처절했다. 재정적으로 큰 빚을 졌기 때문에 그만둘수도 없었다. 그냥 버티는 게 답이라는 생각만 했다. 재정적인 빚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선택에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었다는 생각에 어째야 할지 몰랐다. 매니저한테 털리다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끔찍한 매니저 덕에 팀에 여러명이 한번에 아웃했었는데 그 중 동료 한명이 받고 있던 상담 프로그램과 선생님을 추천해주고 갔다. 퇴사 선물로 꽃도 선물해줬다. 버티는 나를 보면 꽤나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2022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국제적으로도 굉장히 우울했던 시즌. 삼일절에는 마음이 아주 조금 여유로워졌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 내가 최악인 상태이다 보니 나보다 더 최악인 상태의 사람을 돕고 싶었다. 

심리상담을 시작했지만 진통제도 아니고 당장 효과를 보기는 어려웠다. 요가원을 찾아 헤맨 끝에 맘에 드는 요가원을 드디어 찾았다. 월 1회로 매일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혼의 안식처를 찾은 기분이라 매우매우 기뻤다. 

이사온 동네에서 맛집을 찾을 수 없어 집에서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먹었다. 마음이 넉넉치 않아 집들이도 얼마 못했다.


2022년 4월~5월 / 

최악의 매니저가 휴직 간 사이에 팀 매니저가 아예 변경되는 사태가 발생.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위기는 기회였다. 열심히 일했고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주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요가를 꾸준히 했다. 상담은 계속 진행했다. 샘이 많은 용기를 줬고 점점 나아졌다. 그 힘을 원동력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많이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안 살림 마지막 과제였던 에어컨까지 장만 완료했다. 

제일 친한 친구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게 됐다. 마음이 너무 헛헛했다.


2022년 6월 / 

휴가를 떠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현충일에는 무주독립영화제에 갔고 숲속에서 한밤의 피크닉을 즐기며 재밌게 보냈다. 차가 너무 가지고 싶어졌다. 생일을 맞이해 새로 만난 친구랑 내가 좋아하는 인제로 여행갔다왔다. 책도 읽는 여유가 생겼고 일이 조금씩 잘 플리기 시작했다. 


2022년 7월~8월 / 

신나게 일하면서 놀았다. 다소 우울한 상태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났고 더 이상 상담이 필요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만해도 좋을 것같다고 내게 혼자 일어서보라고 했다. 무서웠지만 언제까지 상담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 혼자 잘 살아보기로 했다. 타이밍 좋게 워케이션 기회도 생겼다.

1주는 제주에서, 1주는 양양에서, 또 여러번의 주말 양양으로 향했다.

휴가가는 동안 추석 명절에 새롭게 론칭하는 프로그램때문에 미친듯이 바빴다. 새벽 3시까지 술먹고 놀다가 9시부터 일하는 미친 일정을 소화하다가 정말 몸이 골로 갈 뻔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누군가 나를 정말로 필요했고 또 휴가를 다녀와서 나를 반겨줄 일상이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내가 늘 하고 싶었던 '집을 벗어나 일하기'를 해볼 수 있어서 기뻤지만 워케이션은 쉽지 않았다.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2022년 9월

너무 신나는 여름을 보낸 덕분에 후폭풍이 너무 컸다. 에너지 넘치던 계절을 지나오니 갑자기 너무 루즈해졌다. 솟구치기 시작한 에너지가 갈 곳없이 떠도는 느낌 때문에 또 조금 방황했다. 급하게 선생님을 찾았고 선생님이 혼자 요가하는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혼자 요가하는 것은 재미없었다.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에너지를 쏟고 싶었는데 재택근무자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밖에 나가서 일하는 날들이 많았다. 비싼 전동책상을 사두고 결코 한곳에 앉아서 일하는 법이 없었다. 마음이 불안했고 또 힘들었다. 새로운 에너지 분출처를 찾으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여름에 너무 넘치게 돈을 써대서 조마조마하게 카드값을 갚으며 살았다.


2022년 10월 

여전히 불안했다. 일에서 성과를 내고 조직에서 나를 빛내주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휴가의 여파가 남아있었던 것같다. 10월의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데 좋은 날씨를 많이 즐기지 못할 정도로 마음은 많이 방황했다.

요가원에서 만난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에게 커리어 고민을 상담을 해주며 내가 떠나온 자리를 소개해줬다. 5개월동안의 열렬한 구직활동 끝에 싱가포르 취업에 성공했다.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축하해줬지만 나는 그동안 헤매느라 뭐했지? 라는 현타가 쎄게 왔다. 나보다 어린 친구였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꿋꿋이 해내는 모습이 멋졌다. 얼마 안남은 2022년.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그간 너무나 사랑했던 요가를 좀 더 깊게 공부해 보고 싶었고 단순 아사나를 넘어 몇 천년 이어온 철학과 정신을 배우고 싶었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공부하기로 했고 매주 토요일 요가원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영화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고 완전히 빠져 살았다.


2022년 11월

마음을 잘 맞춰 일하던 팀장님이 떠난다는 소식과 함께 많이 흔들렸다. 요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매주 토요일에 어떤 것에 심취해 공부하는 게 만족스러웠다. 요가에 대해 다양한 걸 배우기도 했지만 불안을 이기는 방법을 배운 것같았다. 불안한 일이 생기면 이 불안 에너지를 다른 곳에 분출하면 된다. 친구와 함께 술을 먹다가 난자 냉동을 결심했고 당장 12월의 사이클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불안 에너지를 난임병원을 찾고 난자 냉동에 대해 공부하는 데 썼다. 난자냉동에 대해 공부하면 할 수록 올해 꼭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면마취가 무서웠지만 그건 덕분에 12월에는 꼼짝없이 술도 먹지 않는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2022년 12월

한해 동안 내가 론칭한 프로그램이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다. 성과를 인정받았고 팀장님이 없는 자리에 상무님이 나의 성취를 치하해 주었다. 성과를 인정받은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요가와 명상을 공부하며 누군가와 섞이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졌다.

9월, 10월 마음이 불안해서 늘 밖에 나가서 일하곤 했는데 요가원에서 토요일 마다 요가를 공부한 후로는 늘 내 책상에서 일을 처리한다. 내 에너지들이 정상적으로 분배되는 느낌이라 만족스러웠다. 이걸 혼자 유지할 수 있을까 아직 의문이 들지만 11월, 12월은 요가 공부와 함께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에 12월에 고마웠던 분들을 챙겼고 감사의 마음도 전할 수 있었다.  

내 욕심만큼 난자를 채취하진 못했지만 좋은 보험을 들어놨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했다. 그리고 너무 편안하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총평: 자립하는 한해였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 시스템에서 혼자 살아내는 법을 익힌,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 일할때도 즐거웠고 모든 속박에서 좀더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비록 아직 내 차도 없고 명품백도 하나 없지만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갖춰가는 기분이다. 내년에는 좀 더 계획적으로 에너지를 분배해서 좀 더 알차게 살아야지


그리고 오늘 12월 마지막날. 이민 떠났던 친구가 한국에 잠깐 머문다고 해서 낮술을 하기로 했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술에 취하기 전에 한해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12월 한달동안의 금주를 깨고 드디어 술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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