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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쟌트 Mar 01. 2022

[D+100] 축 백일*

짜꿍이, 할아버지를 만나다.

짜꿍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됐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나 빠르게 100일 동안 폭풍 성장한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감격스러웠다. 막 태어나 정말 쪼끄마해서 부서질 거 같은 아이였는데, 어느새 두 배이상 몸무게를 늘려가며 제법 묵직한 아이가 됐다. 눈꺼풀 하나 뜨기 힘들어하던 짜꿍이는 이제는 목도 어느 정도 가누고, 아빠 엄마 허벅지에 앉아서 세상을 구경하는 게 더욱더 신기한 아이가 됐다. 처음에 너무 힘든 일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는 별다른 탈 없이 너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 너무 고맙다. 아내도 육아 초기 힘듬을 이겨내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정상의 궤도에 있는 것 같다. 


아내의 제안으로 오늘은 특별한 행사를 갖기로 했다. 바로 할아버지(나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 운이 좋게도 오늘은 삼일절 공휴일이었고, 나는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나서 오랫동안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때문에 꽤 먼 거리였던 아버지가 모셔진 추모공원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짜꿍이에게 너무도 특별한 날,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제안한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다. 꽤나 먼 거리였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를 했다. 두세 시간 외출을 하고 오는 것과는 또 다른 여정이었다. 짐은 어느 순간 세네 배로 불어나 있었다. 조그마한 생명체가 이동하는데 필요한 짐이 어마어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뵈러, 이쁘고 귀여운 손녀딸을 보여드릴 생각이 기분이 좋았다. 


중간에 어머니를 모시고 , 총 합 두 시간 이상의 운전을 한 뒤,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꽃을 선물했다. 짜꿍이를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며, 건강하게 지켜달라고 말씀드렸다. 아내가 '편지라도 써서 남겨'라는 말을 했다. 항상 올 때마다 간단히 편지를 적어놓고 갔는데, 그게 생각이 났나 보다. 그러면서 즉흥적으로 편지를 써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짜꿍이를 안고 활짝 웃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냈다. 상상인 장면이었는데 꽤나 강렬했다. 그 모습을 실제로 보진 못하는 장면이라서인 눈물이 왈칵 나왔다. 상상 속의 장면이 실현되었으면 하는데,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쉬웠던 거 같다. 정말 너무 좋아하셨을 텐데.. 짧은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짜꿍이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싫진 않았던 거 같다. 울지 않고 차분히 사진을 몇 번 스캔하더니 내 어깨로 올라왔다. 낯선 공간의 낯선 조명들이 아직은 갓 백일 된 영아가 집중하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이리저리 눈을 휘둥그레 굴려가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그래도 기분 탓인지 할아버지의 얼굴을 좀 더 길게 봤다고 생각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셀프 백일상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카메라로 잠깐 몇 장을 사진을 찍었고, 스튜디오도 예약했기 때문에 너무 중복되는 일을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 대신 정말 값진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이런 제안을 해준 아내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짜꿍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짜꿍이가 살아가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백일 동안 해왔던 거처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건강하게 짜꿍이가 자라났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그런 짜꿍이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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