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그늘 Aug 06. 2022

2만분의 1의 확률(with. 조혈모세포)

*의학적인 용어나 정보 등은 틀릴 수 있습니다. 순전히 개인 경험에 의해 작성된 글입니다.


  평균적으로 2만분의 1의 확률.

  그러니까. 가족이 아닌 사람이 혈액암 환자와 유전자형이 일치하여 기증이 가능한 확률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 특별히 실감 나진 않았다. 한국 조혈모세포협회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교 다닐 때, 조혈모세포에 대한 인식 개선과 홍보에 참여한 게 인연이었다. 그때, 약간의 피를 뽑아서 유전자형을 등록해 놨었는데 이게 연락이 올 줄이야. 사실 당시에 별생각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살면서 한 번도 연락 안 오는 일이 부지기수고, 또 연락이 오더라도 그때 기증을 거절해도 된다고 했다. 그만큼 확률도 낮고,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근데 막상 나와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분이 나타났다고 하니까. 느낌이 색달랐다. 이게 되네?

  “안녕하세요. 한국 조혈모세포협회입니다.”

  모르는 번호로 온 뜬금없는 연락이었지만, 낯설지만은 않았다. 유전자형을 등록한 그 날 이후로, 매년 협회에서 연말이면 달력을 보내줬으니까. 매년 그 달력을 보면서 나와 상관도 없는데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다. 근데 아니었다. 큰 착오였다. 다 이를 위한 큰 그림이었구나. 협회는 기증을 진행할 의사를 물었다. 단순히 내 의사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의사도 물어보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기증자가 동의했다가 부모님의 반대로 기증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절차였다. 흠. 고민이 되었다. 막말로 여기서 죄송해요. 그냥 안 할게요. 라고 하면 내 일상은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이어질 터였다. 절차적으로 협회는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나는 그렇게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꼭 해야지 같은 숭고함은 없었다. 단순하게 두 가지 경우로 생각했다. 기증할 경우와 안 할 경우. 우선, 안 한다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계속할 터였다. 그리고 만약 한다면 음주와 운동을 못 하고, 잘 지켜오던 내 삶의 루틴이 망가지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명료해졌다.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 그 정도라면 딱히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체로 기증 후에 후유증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증으로 인해 건강으로 걱정할만한 부분은 크게 없었다. 내 성격적으로 그보다 걱정되는 건 예기치 못한 일정이 신경 쓰이는 정도였고, 겨우 이 정도 손해로 누군가 살 수 있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동의를 얻고, 그렇게 기증 의사를 비쳤다. 

  여러 절차를 거치고, 기증 날이 정해졌다. 그리고 기증 3일 전부터 세포를 촉진 시킨다는 그라신 주사를 맞았다.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들었지만, 그보다 주사를 맞으면 생기는 현상들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었다. 두통이나, 근육통 등이 온다고 했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프면 먹으라고 진통약도 주었다. 주사를 맞고 첫날은 나쁘지 않았는데 두 번째 날은 주사를 맞고 나니 근육통과 두통이 조금 심했다. 약간의 감기·몸살 같은 증상도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약을 먹진 않았다. 세 번째 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약을 먹었다. 사실 난 최대한 약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무식한 일이긴 했지만, 왜인지 그러고 싶었다. 아마 기증하는 일로 일상의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게 기증하기로 맘먹었지만, 계속 한 편으로는 괜히 했나. 눈 감고 모른 척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곤 했다. 힘듦을 떠나, 음... 그냥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태연하려고 노력했다. 그라신 주사를 맞고 몸이 좋지 않아도, 기증 일로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일정을 잡아도 최대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약을 먹고 안 먹고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자’였다. 그냥 원래 내가 할 일이고, 다 지나갈 일이라고 말이다. 

  기증 전날, 기증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생각해보니 병원을 입원해본 기억이 없다. 아니, 있나. 이렇게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다지 친한 곳은 아니었다. 모든 게 낯설었지만, 그래도 오히려 휴가 왔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기로 했다. 근데 마음은 그렇게 먹었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안 편했다. 병원이 주는 그 묘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두통은 약을 먹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기증 당일, 이제는 피할 수도 없다. 진짜 단순하게 얼른 끝내고 집에 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혈관이 나쁘지 않아 팔에 있는 혈관으로 세포를 채집하기로 했다. 피를 뽑는 5시간. 정확히는 한쪽 팔에서 피를 뽑고, 기계로 조혈모세포를 걸러낸 다음, 남은 피를 다시 다른 팔을 통해 넘는 작업을 5시간 동안 진행했다. 진짜 심심하고, 생각보다 혈관에 꽂힌 주사가 아팠다. 누운 채 멍하니 5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채집이 끝이 났다.

  아,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세포 수가 부족하면 다음 날 오전에 또 한 번 채집할 수도 있었다. 병실에서 쉬는 동안 연락만을 기다렸다. 제발, 세포 수가 충분하여라. 그리고 걸려온 전화. 충분하다는 얘기였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그 감정은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냈으면 느끼지 못했을 행복이니 말이다.

  퇴원하고, 시간이 흘렀다. 몸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거의 한 달을 운동을 못 해서 살이 좀 찌고, 확실히 운동 능력이 많이 감소 된 게 느껴진다. 기증받으신 환자분은 나의 세포가 일단은 잘 생착되어서 퇴원했다고 한다. 완치라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 검진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분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한다. 새삼 기분이 묘하다. 그런 인사를 받아도 될 정도의 일을 한 걸까.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퇴원했다는 소식에 살짝 따뜻한 감정이 올랐다. 부디 별문제 없이 계속 잘 지내시길 바랐다. 거창한 감사패도 왔다. 숭고한 인류애며, 생명을 구했다며 등등의 말이 보이는데 이 또한, 딱히 실감이 안 나고, 그 정도 일인가 싶다. 바늘이 좀 따갑고, 두통과 근육통으로 좀 고생하긴 했지만, 비하자면 고작 아닌가. 물론, 다시 하라고 한다면... 그건 좀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을 돌려서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는 말할 수 있다.

  기증과 상관없이 2만분의 1의 확률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기도 했다. 뭐랄까.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다른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도 사보지 않은 로또를 구매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의미도 있다 생각했고, 좋은 일 했으니까. 행운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당연히 당첨은 안 됐다. (로또 당첨 확률은 2만분의 1보다 훨씬 더 낮다고 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b...) 

  그래도 생각의 변함은 없다. 로또 같은 요행이 아니더라도 가능성이란 건 얼마든지 열려있고, 결국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기증이고, 어떻게 보면 그 가능성과 좋은 경험을 교환했다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아마도 이 생각과 노력은 평생 가지고 가겠지만, 정체되어있는 것보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내게, 이번 일은 나에게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이 낮아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