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그늘 Aug 15. 2023

2. 어른들의 놀이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빠르게 가기 위해선 항상 지나쳐야 하는 놀이터가 있다. 몇 년 전에 새 단장을 마쳐 가운데에 떡하니 작은 집라인이 생긴 놀이터는 보기엔 꽤 멋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집라인을 타겠다고 줄을 선 채 대기했고, 새로 생긴 미끄럼틀과 그네도 하하호호 웃으며 재밌어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는 날이 아니라면 항상 아이들이 가득했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싱그러운 웃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출근하거나, 어디를 갈 때 놀이터를 지나쳐 가는 건 내게도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놀이터는 삶이 느껴졌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모습까지. 각자 저마다의 세상을 가진 이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하지만, 삶은 밝은 면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난 놀이터를 가로질러 가는 걸 주저하게 되었다.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놀이터를 피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아이들은 종종 놀이터에서 볼 수 있었지만, 꺼리게 된 건 어른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였다. 놀이터 안에 있는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해졌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모두 출퇴근하듯 놀이터에 비슷한 시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 앉아 막걸리를 과자 같은 걸 안주 삼아 마셨다. 솔직히 말해 새롭진 않았다. 이전에도, 종종 봤던 광경이었다. 지나가다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전과 조금 다른 건 점점 심해졌다는 점이다. 놀이터는 어른들의 아지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공간에 이상한 냄새가 배었다. 그것은 술 냄새와 땀 냄새가 교묘히 섞인 묘한 악취였다. 

  경찰이 놀이터에 나타난 걸 여러 차례 보았다. 이와 같은 상황이 우연히 보게 된 것임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많은 방문이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쯤되면 이 놀이터는 과연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되면 놀고 싶은 아이들과 한낮의 술 파티를 즐기려는 어른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좋게 보자면 마치 명절 같았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놀았고,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듯했지만, 돗자리 하나를 둔 채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번은 학부모처럼 보이는 여자가 놀이터에 온 경찰과 말싸움하는 걸 보았다. 여자가 무언가를 보고 신고한 듯했다. 놀이터 안에는 방금까지 누군가 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돗자리와 술병, 그리고 쓰레기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신고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학부모는 여기서 술 좀 못 마시게 하라고 항의했지만, 우습게도 그 옆에는 술 금지라는 플랜카드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정확히는 소란 금지와 음주 금지, 애정 행각 금지 등의 문구였다. 이래저래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허울뿐인 문구였다.

  경찰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항상 상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의를 안 준 것도 아니었다. 가끔 일어나는 싸움을 중재하러 나타나는 것도 부지기수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는 매일 작은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한번 그렇게 소동이 있고 경찰이 오고 나면 며칠이지만 어른들이 모습을 안 보이기도 했다. 정말 아주 며칠뿐이었다. 

  계절에 따른 놀이터의 모습도 참 다양했다. 한겨울에는 아이도 어른도 그 모습을 보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러다가 가끔 날이 풀리는 날이면, 벤치에서 잠을 자는 아저씨들이 종종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싶었지만, 매번 궁금함만 품을 뿐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놀이터에서 윤리적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누워있는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 신고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였다. 한겨울이라면 걱정이 되어서 신고해야 할까. 그런데 벤치에 누워있는 거라면, 그건 본인이 참을만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면 바닥에 누워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까. 누워있는 걸까. 쓰러진 걸까. 그게 구분은 될까. 한여름은 또 어떤가. 한여름에 길바닥에 누워있다면 이는 술에 취한 자고있는 걸까. 어딘가 아파 쓰러진 걸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갈등하게 만드는 곳이 놀이터였다. 사실 쓸데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신경 쓰기엔 그 횟수와 사례가 너무나도 많았다.

  난 그 모든 이들이 다 어디서 무슨 이유로 오는지가 궁금하곤 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온다고 해도 어른들은 왜일까. 낮에 일이 없어서일까. 모이는 이들이 사실 서로 아는 사이인지도 불명확했기에 그 어떤 것도 추측에 불과했다. 다만, 마냥 노숙자라고 하기엔 딱 봐도 집이 없는 사람들 같진 않다는 거였다. 그중엔 자녀와 함께 온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놀이터는 내게 물음표가 가득한 공간 같다. 단 한 가지 이유로 찾아오는 아이들과 각기 다른 이유로 모여드는 어른들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곳.

  분명 놀이터를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엄연히 금지되어 있기에 그곳에서 술을 마시거나, 위생과 미적인 부분을 위해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일 같은 건 없어져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그러한 일을 벌이는 건 어쩌면 그들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닐까. 잘못됐다는 인식이 없기도 할 것이다. 그때뿐이라는 게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들은 그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게 아닐까.

  경찰이 와서 주의를 줘도 시간이 지나면 어른들은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아이들은 놀이터이기에 계속 놀기 위해 찾아온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야 하는 공간에 어쩐지 길을 잃은 어른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모습이 단순히 미관상 좋지 않다는 걸 넘어 정서적으로 조금 씁쓸해 보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토스트를 팔지 않는 토스트 가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