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의 업무만큼 다양한 법률 업무
사실 연방정부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정부 변호사는 대부분 소송(litigation) 업무를 많이 다룬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실제로 연방정부가 미국인들의 일상 곳곳에 손길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만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연방정부 소속 변호사의 업무 범위는 소송에 그치지 않고 매우 방대하다.
1. 소송(litigation)
물론 많은 수의 연방정부 소속 변호사는 어떤 방식이든 소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가장 흔히 생각할 수 있고, 미디어를 통해 많이 접하는 소송 업무는 형사 소송이다. 연방 정부에서 형사소송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사람들은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소속 변호사들이다. 법무부는 법무부 본사(Main Justice)와 지역구 연방검찰청(US Attorney's Office)으로 나눌 수 있다. 법무부 본사는 주로 대규모의 전국구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지역 연방검찰청은 해당 연방지역구의 모든 연방형사 사건을 다룬다. 이 두 집단에 속한 변호사들은 연방검사(Federal Prosecutor)라고 일컫는다.
법무부에는 민사소송을 다루는 부서(Civil Division)도 따로 존재한다. 이 경우 소속 변호사들은 미국 정부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는데, 그 종류를 적극 소송(affirmative litigation)과 방어 소송(defensive litigation)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서는 미국 정부가 원고이고, 후자에서는 피고가 된다. 민사소송의 대부분은 연방법원에서 이뤄진다. 일부 노동법 관련 사건은 노동부 소속 변호사가 직접 연방법원에서 사건을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정부기관(예: 보건복지부)이 민사사건으로 피소되면 법무부 민사소송 담당 변호사가 해당 기관 소속 변호사의 보조를 받으며 사건을 진행한다.
그러나 연방정부 소속 변호사 전체로 보면, 법무부 소속 변호사는 극히 일부이다. 왜냐면 연방정부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소송은 행정법원에서 이뤄지고, 연방정부에서 직간접적으로 소송을 다루는 변호사는 행정소송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미국 정부에는 각 정부기관마다 행정법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행정법원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통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의 경우 교통부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행정법원(Office of Hearings)에 소속된 행정판사(Administrative Law Judge, 줄여서 ALJ)가 있고,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는 기관의 사회보장 혜택의 인허가 결정을 검토하는 행정판사가 있다. 이들 행정법원은 연방법원보다는 완화된 소송절차규정을 따르고 있지만, 대부분은 연방소송과 비슷한 절차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2. 공공계약법/조달·입찰법 관련 업무(acquisition/procurement/government contracts)
미국 정부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은 대부분 공공계약과 조달을 통한다. 즉, 정부가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실제 정부가 하는 일은 예산을 집행함으로써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사설업체를 고용하고 그와 관련된 용역 계약을 관리하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하와이에서 태풍이나 화재가 발생한 경우, 연방정부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식수와 연료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때 연방정부는 특정 기한 내, 미리 정해진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마실 물과 휘발유를 특정 지역까지 공급할 수 있는 납품 업체를 선정하고, 현지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주민에게 해당 구호물자를 전달할 용역 업체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입찰공고, 제안 및 견적제출, 제안평가, 낙찰공고, 계약관리, 계약종료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연방조달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줄여서 FAR)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이 FAR의 존재 목적은, 공공계약 과정이 공평하고 투명하되, 구매자(정부)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예산을 지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서 발생하는 계약을 공공계약(government contracts)이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모든 절차에서 법적 조언을 하고,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는 변호사를 공공계약 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이를 사기업에 비유하자면 구매부서를 지원하는 법무팀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정부기관 사이에서도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필자가 소속된 기관은 종종 다른 기관에게 필요한 물자나 재화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구매하는 기관과 판매하는 기관 사이에 기간관 협약(interagency agreement)을 체결한다. 정부 기관 사이에 무슨 계약이 필요한가 싶을 수 있지만, 미국 정부기관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계약이 필수적이고 심지어는 분쟁 해결기구도 따로 존재한다.
3. 인사 및 노동법 관련 업무(labor and employment)
이건 사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사 및 노동법 관련 업무는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업무 분야 중에 하나로 간주된다. 기본적으로는 채용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직원들이 승진과 업무분장에 있어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특히, 연방정부는 인종,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배경, 가족상황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한 때 연방정부 공무원은 코로나 백신 접종이 의무화된 적이 있었다. 이때 수많은 공무원들이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백신 접종을 거부했고, 덕분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은 공무원들이 위의 차별 금지법을 근거로 진정이나 민원을 넣었다. 이에 대해 노동법 변호사들은 개별 사례들이 차별 금지법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인사과 공무원들에게 적절한 처리 방안을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공무원의 비리나 부패를 조사하여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것도 노동법 변호사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공무원의 성추행이나 성희롱, 혹은 괴롭힘 행위가 접수된 경우, 이에 관한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그게 사실이라면 정당한 처벌을 내리는 일에도 관여한다. 만약 그 정도가 심각해서 정직 및 해고 등의 처분이 결정되면, 그 처분과 절차의 적법 여부를 행정소송을 통해서 재검토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행정법원에서 소속 기관을 대리하는 것도 노동법 변호사의 역할이다.
4. 정보관리 및 보안과 관련된 법무(FOIA/privacy law)
미국 정보는 정보공개 청구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줄여서 FOIA)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누구나 (심지어 미국인이 아니어도) 미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 정해진 법적 예외 규정에 따라 정보공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정보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내 사무실 책상에 붙어있는 포스트잇 메모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도-법적 예외요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면-청구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의뢰인의 이민국 서류에 대한 정보요청을 한 적이 있는데 해당 이민국 직원이 내 의뢰인을 인터뷰할 때 손으로 적어 놓은 낙서 비슷한 필기 내용까지 스캔되어 받은 적이 있다.
한편으로, 미국은 사생활 보호법이 강력하고, 특히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의 보안에 관한 법률은 매우 엄격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법적인 조언을 주는 변호사가 법무팀에는 꼭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한 경우 신청인이 이에 불복해서 연방법원에서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웬만한 연방정부의 법무팀에는 FOIA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가 꼭 한 두 명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5. 기타 정부기관의 업무에 따른 법무
위의 네 가지 대표적인 업무는 어느 기관 법무팀이나 존재하는 법률 업무지만, 그 외에 기관의 관할 업무에 따라 특정 법 분야를 담당하는 변호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각 군에 소속된 법무팀에는 군사 훈련이나 작전의 적법성에 관하여 조언을 하는 변호사가 있고, 첨단 기술을 다루는 항공우주국(NASA) 같은 경우에는 변리사(patent attorney)가 법무팀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복잡한 외교 문제를 다루는 국무성(State Department)의 경우에는 UN관련 규정이나 국제법을 다루는 변호사가 존재할 것이다.
만약 현재 사기업이나 로펌에 근무하고 있지만 연방정부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연방정부의 일반적인 법률 업무나, 혹은 원하는 기관의 고유한 업무와 연관된 법무와의 연관성을 고려해서 지원한다면 취업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