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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pr 28. 2024

배심원 중에 변호사가 포함된다면?

트럼프 형사 재판의 배심원에 포함된 두 명의 변호사.

재판을 받는 트럼프 (사진 출처:apnews.com)

지금 뉴욕에서는 전직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의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상 최초로 전직 미국 대통령을 기소한 건이며, 재판결과에 따라 대선의 판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형사재판은 12명의 배심원이 최종평결을 내린다는 점에서 이들의 결정이 미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유죄가 나온다면 트럼프의 신뢰도는 크게 하락하여 그를 지지하는 중도층 및 온건 보수층의 표를 잃어 대선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무죄가 나온다면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배심원 중 두 명의 변호사가 포함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연 이 점은 검사 측에 유리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 측에 유리할 것인가?


우선, 배심원 선정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야겠다. 주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확실한 것은 유권자로 등록된 미국 시민만이 배심원에 참여할 자격이 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무작위로 우편을 통해 배심원 출석 통지를 받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온라인으로 우편 수령확인을 하고 추가 정보를 입력하면, 출석날 하루나 이틀 전에 최종통지를 해준다. 보통 재판 직전에 당사자가 합의나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예정대로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이날 출석하는 배심원 후보들은 처음에 법원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호명되기까지 기다린다. 재판이 시작되면, 법원 직원이 배심원 후보들을 각 법정으로 이동시킨 뒤 판사가 배심원 번호를 부르면 순서대로 배심원석에 앉게 되고, 남은 배심원들은 방청객 석에 자리 잡는다. 한 번에 보통 20~30명 정도의 배심원들이 법정에 들어서는데 형사재판의 배심원 숫자인 12를 맞추기 위해서 이제 배심원 예비신문 과정(voir dire)을 거친다. 처음엔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 이 때는 배심원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재판이 길어질 경우에 여행이나 병원진료 등의 지장은 없는지, 혹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재판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지 등을 묻는다. 여기에서 일단 적합하지 않은 배심원 후보를 걸러낸다. 이후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이 배심원 후보를 상대로 각각 질문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때 양측 변호사들의 목표는 자신에게 불리한 배심원을 최대한 배제하고, 반대로 유리한 사람을 배심원으로 채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상대방 변호사가 이를 알아채고 임의 배제(peremptory strike)로 나에게 유리한 배심원을 배제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전자 쪽에 치중한다. 


이때 배심원 후보에 변호사가 있다면, 검사 측과 변호인 측 중 어느 쪽에 유리할까?


나에게 형사 실무를 가르쳐 준 선배 국선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변호인 측에 유리하다고 했다. 왜냐면, 미국 형사 체계에서는 법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입증부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beyond reasonable doubt이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 유죄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민사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장 낮은 입증부담은 a preponderance of evidence 즉, 증거의 우세이데, 이는 증거가 51대 49만 되어도 승소한다는 뜻이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당연히 아는 이러한 간단한 입증 부담수준을 일반인들이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반면, 변호사들은 로스쿨에서 1학년 필수 과목으로 형사법을 배우기 때문에, 실제로 유죄를 내리기 위해서 얼마나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변호사 입장에서 검사 측이 주장하는 증거와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반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무죄가 된다.


게다가 배심원들 사이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다. 배심원들은 기본적으로 법에 무지하고, 재판철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그룹 내에서 그나마 가장 법을 잘 아는 변호사에게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 변호사가 '합리적 의심'에 근거해서 무죄라고 믿는다면? 분명히 다른 배심원들도 그 변호사의 전문성을 믿고 같은 결정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변호사의 기본 스킬은 남에게 무언가를 이해시키고, 더 나아가 설득하는 것 아닌가? 만약 변호사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배심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변호사가 그를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오는 것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배심원 재판에서는 변호사가 배심원으로 선정되는 경우를 본 적이 드물다. 왜냐면 검사 측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배심원에 변호사가 선정되는 것을 대부분 꺼리고, 기회가 되면 바로 임의 배제를 활용해서 배심원 후보를 제외시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 배심원 재판에서는 배심원 12명의 만장일치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검사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유죄는 물 건너간다. 반대로 말하면, 변호인 측에서는 한 명만 제대로 설득해도 유죄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트럼프 재판에서는 어떻게 변호사가 두 명이나 들어갔을까? 


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자면 두 가지 정도가 있을 것 같다. 한 가지는, 검사 측에서 이들의 존재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들을 배제시키지 않은 것이다. 배심원 후보 군에는 두 명의 로펌 변호사가 포함되었는데, 둘 다 형사사건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분야에 종사한다고 했다. 한 명은 기업 법무변호사이고, 한 명은 민사 송무변호사라는 것 같다. 이 둘은 뉴욕에서 가장 흔한 법 분야이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혹은 검사가 제시할 증거나 주장들을 봤을 때, 오히려 변호사의 존재가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봤을 수도 있다.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의 증거를 반박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증거와 증거 사이의 연관성이나 관련성, 복잡한 형사법리를 설명할 수 있는 배심원으로 변호사를 원했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조금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검사가 다른 배심원 후보들을 우선적으로 배제하는 바람에 이 두 명의 변호사를 제외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뉴욕 법에 따르면 중범죄 재판에서는 15~20개의 임의 배제를 활용할 수 있는데, 만약 검사 측에서 이를 전부 소진해 버려서 변호사 출신 배심원들을 제외시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뉴욕(맨해튼) 거주자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소득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라고 할지라도 증거가 확실하면 정치적인 생각으로 트럼프의 무죄를 주장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는 검사 측에서 확보한 증거나 증인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진실은 검사만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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