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필사 中
나와 부모님은 서로 데면데면 하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도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의 궁합은 매우 안 좋다. 부모님과 나는 어떤 점은 놀랄 정도로 닮았고, 어떤 점은 매우 다르다. 고집스러움, 오만함, 독선적인 태도는 비슷하다. 반면 성공에 대한 기준이라든가, 야심이라든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서로 생각이 극과 극에 있다. 성격은 비슷하고 가치관이 다르다. 최악의 조합이다. 내가 부모님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이러했다. 내가 내 딴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추진한다.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완전히 비상식적인 일이다. 부모님이 반대한다. 언젱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대를 모욕한다. 폭언을 퍼붓는다. 양쪽이 다 상처를 입는다. 결국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 양쪽이 똑같이 잘못했나? 그렇지 않다.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부터 부모님의 잘못이다. 자식이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지 않을 때, 거기에 부모가 반대할 권리는 없다. 반대는 할 수 있어도, 모욕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부모 인생이 아니라 자식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나는 그런 '애완 인간'을 여럿 봤다. '헬리콥터 맘'은 언론의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사표를 스스로 낼 용기가 없어서 아버지가 대신 사직서를 내준 젊은 엘리트를 안다. 학벌도 좋고 영어도 잘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애완인간 이었다. 희고 고운 피부아래, 순하고 눈망울이 여린,바들바들 떨고있는 소형견이 들어있었다. 그런 애완 인간임이 분명한 변호사도 한 명 안다. 스펠은 좋지만 속은 비어 있다.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신자유주의 어쩌고 시민 불복종이 어쩌고 코스프레를 하지만, 시누이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겁쟁이들. 추상적인 적을 상대할 때에만 저항 정신을 열변할 수 있는 비겁자들. 그래서 자꾸 거대한 상상의 적을 만들어내는 음모론자들. 교수, 판검사, 의사, 약사, 회계사, MBA, 대기업 직원 중에 그런 애완 인간들 많을 거다. 요즘 한국에서는 애완 인간으로 살아야 그런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자기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가거나 로스쿨 학비를 댈 수 있는 20대가 몇이나 되나.
자식이 위험에 빠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모험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모험을 권하는 부모도 없다. (선량한 부모들이 자식에게 모험을 허락하는 순간은, 자식에게 닥칠 최악의 위험도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을 때이다. 그래서 부자 부모 아래서 자란 젊은이가 더 많은 모험을 누리게 되고, 더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건 사는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