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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호 Apr 27. 2024

도시마다 고유한 서체를 가진 나라

서체기행

한국폰트협회 정석원 회장님 소개로 원고료 받고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도시마다 고유한 서체를 가진 나라,

도시 브랜드 서체


전국 243개 도시 중 도시 브랜드 서체를 개발한 곳은 81곳에 달한다. 3개 도시 중 1개가 고유한 서체를 갖고 있는 셈인데 이는 전 세계를 둘러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실제로 곳곳에서 어렵잖게 도시 브랜드 서체를 찾을 수 있다. 모든 고속도로 안전 전광판에는 포천시가 개발한 포천 오성과한음체를 사용하고 있고, 포천 막걸리체 서체는 전북 무주의 어느 식당 간판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도시 브랜드 서체가 개발되었을까?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지역별 CIP 개발이 본격화됐다. 경기도 부천시의 상징마크 개발을 필두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일제히 로고, 캐릭터, 색상 등을 발표했고, 이러한 흐름이 2000년대 도시 브랜드 서체 개발로 이어진다. 전라북도체(2000년)를 시작으로 서체도 도시 브랜드 디자인의 기본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초기 활용 범위는 지엽적이었다. 당시 개발한 서체는 이미지 형태로 전산 글꼴화(폰트)가 되어 있지 않아 공문서, 안내표지판 등 두루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정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일반서체와 혼용하면서 도시브랜드의 이미지 통일성에 혼란을 야기했다. 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뒤 지자체들은 디지털 환경에 걸맞은 서체(폰트)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부산 C.I 서체 전산글꼴화 디자인개발 용역(2010년 3월)이 대표적이다. 부산시는 1995년 부산시 이미지통일화계획의 일환으로 개발한 한글 서체 342자의 이미지 글꼴을 바탕으로 2010년에 한글 2350자(완성형, KS코드)를 우선 개발하고, 서체의 확장성과 다양한 활용을 위해 유니코드 Unicode 기준을 충족하는 한글 완성형 1만 1172자를 제작하게 된다. 지자체의 서체 개발에 불을 지핀 건 팬데믹이 결정적 발단이 됐고, 이에 서체 개발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전국 총 26곳 서체 개발을 주도한 투게더그룹의 공헌도 컸다. 실제로 현재까지 개발한 81개 지자체 서체 중 50개는 2021년 이후에 개발했다. 2021년 15곳, 2022년 14곳, 2023년에는 17곳의 지자체가 서체를 개발했다. 이러한 흐름은 점차 세분화되어 도시 단위가 아닌 자치구 및 관련 산하 기관도 속속 디지털 서체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도봉구(2021년)의 ‘도봉옛길체’, 금천구(2022년)의 ‘금천G밸리산스체’ 등 서울시의 25개 구 중 6개 구가 별도 서체를 개발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영도문화도시센터(2021년)의 ‘영도체’는 세계 유수의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을 했고, 누적 다운로드 횟수가 55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간지원조직에서도 서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정체성 확립(36곳) 외에도 지역 인물의 서체 아카이빙(10곳)이나 지역 주민 교육(성인 문해 교육, 한글 교육, 청년 서체 디자이너 양성 교육, 청소년 진로 교육 등 6곳), 지역 특산품 활용(6곳) 지역 문화자원 활용(23곳)으로 확산된 덕분이다. 다시 말해 지역 커뮤니티 안팎의 여러 활동과 사업에서 폰트의 유용성을 깨달은 것이다. 지자체의 서체 개발은 불필요한 예산 투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체는 소프트웨어(OTF, TTF) 이기 때문에 한 번 개발하면 30~40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사용된다. 또한 CI 개발 비용이 3000만 원에서 2억 원 이상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기준) 지방자치단체 평균 2000만 원의 개발 이 투입되는 서체가 오히려 가성비 높은 도시 브랜딩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는 산하기관 30곳(직속기관 18, 사업본부 2, 사업소 10)의 일관된 이미지 구축과 전라남도 산하기관이라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산하기관 개별 CI 개발 대신 ‘푸른전남체’를 개발해 ‘전남도립미술관’ 등에 적용하고 있다. 이후 한글과컴퓨터와 서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한컴오피스의 서체 플랫폼을 통해 ‘푸른전남체’를 확산시켜 나갔고, 도민들의 필요와 사용성 확대를 위해 서체의 굵기를 확장하였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서체’ 부문에서도 국민 누구나 저작권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안심글꼴 파일’을 총 200종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 145종이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영역에서 공공재로 제공하고 있다. OS에 도시 서체를 탑재하는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MS 워드는 2010년에는 서울특별시, 2021년에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경상북도 안동시,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개발한 서체를 탑재했다. 81곳의 지방자치단체가 101건의 서체 용역을 집행했다. 한 번의 서체 개발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도 2024년 4월 9일, 서울서체 2.0 프로젝트가 착수됐다. 공공재로 사용되는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서체는 일반인들의 디자인 의식 함양과 서체 문화 확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서체 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 관은 고루하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공공기관, 지방지치단체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면 서체 디자이너들에게 이 분야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폰트 디자인 역시 시장과 산업,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월간디자인 #서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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