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을 꼭 끌어 안고 귀가했는데 그 꼴이 샌님 그 자체였다.
나는 고등학생 때 아코디언 파일을 들고 다녔다. 사실 나도 '파일'이라고만 불렀지 정확한 이름은 몰랐다. 하지만 확실히 그냥 '파일'은 아니었다. 겉보기엔 플라스틱으로 만든 서류가방처럼 생겼고, 열면 칸이 10개쯤 나뉘어 있었다. 클리어파일 여러 개를 합쳐 놓은 모양이랄까. 열었을 때 아코디언처럼 좍 벌어져서 아코디언 파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 파일은 유인물을 분류해서 한번에 들고 다니기 좋았다. 나는 칸마다 '언어', '수리', '영어', '한국지리' 같은 색인을 붙이고, 학교에서 받은 유인물들을 분류해서 보관했다. 수업 시작 전에 파일을 촤락 열어서 그 과목의 유인물을 책상에 꺼내 놓았다. 학교가 끝나면 파일을 꼭 끌어 안고 귀가했는데 그 꼴이 샌님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파일은 나의 특성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나는 파일 속 유인물을 중복도, 빠짐도 없이 관리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합치거나 분리했다.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니며 원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했다. 정리, 파악, 통제할 수 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리/파악/통제를 할 때 만족감을 느꼈고, 그렇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정리/파악/통제할 수 없어 보이면 내놓은 자식처럼 아예 포기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회에서는 아코디언 파일처럼 정리하고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정리/파악/통제하려는 습성이 생겼다. 그나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에 대한 정리된 상을 갖고, 그대로 살고자 했다. 나만의 본질적인 뭔가를 찾아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편하게 스스로를 정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정리한다고 해도 그에 따라 일관되게 사는 건 더 어려웠다. '무의미하다 그만하자'고 생각할 때도 많았지만, 어느새 다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내가 하는 이 고민이 건강한 고민이 아니라 강박적으로 하는 고민이라는 걸 깨달았다. 냉장고 속 탄산수의 오와 열을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는 나를 정리하고 파악하고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이다.
신경쓰이는 강박증을 갖고 살던 어느 날,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꺼내 놓고 싶었다. 그 상상과 가장 유사하게 해볼 수 있는 게 고민을 종이에 쭉 써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제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뭐가 어려운지, 그래서 어쩌고 싶은지... 그렇게 몇 페이지를 쓰다 보니 쓰면서 뭔가가 정리되기도 했고, 정리는 안 되도 그냥 마음이 후련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강박증을 잠재우는 용도로. 그래서 내게 일기는 기록용이라기보다 쓰는 것 자체가 쓸모였다. 일기를 쓰면서 나에 대해 정리하고 파악하고 통제한 것이다. 나에 대한 인식은 갑자기 한 줄로 짠 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생각과 생각, 하루와 하루가 쌓이고 그것들을 되새길 때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떤 작가에 대한 이야기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한 작가가 직업 란에 '글쓰기'라고 적자 그의 친구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글쓰기가 언제부터 너의 직업이었어? 글쓰기는 너의 종교이자 신념이고, 태도잖아." <호밀팥의 파수꾼>을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이야기를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라는 영화에서는 샐린저가 "글쓰기가 종교가 되었어요"라는 말을 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생각한다고 하면 좀 에바지만 어떤 맥락인지는 약간 이해할 것도 같다. 나는 글쓰기가 내게 뭔지 종종 생각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기도 하고 내 능력의 최대치로 쓸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도 글로 돈을 벌면 땡큐다)은 그냥 생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씀으로써 강박증을 잠재우고 과거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살아가는 방법이 된 것이다.
김이나 작사가의 '한 사람의 결이나 질감은 잘 관리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좋아한다. 누구나 스트레스가 있고 강박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불안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큰 부분이 결정지어진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생존 알고리즘'이 있는 것이다. 내게는 그 알고리즘 중 하나가 글쓰기다. 라고 쓰니 뭔가 엄청 거창하지만 아무튼 나는 덕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