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g O Feb 06. 2021

영진과 현수의 산책

2020년 9월의 어느 날, 


“언니 저 요즘 명상한다 그랬잖아요.. 몰랐던 걸 알아가는 것 같아.."


"왜? 뭘 알아가는데?"


"명상할 때 왜, 코 끝에 스치는 숨에 집중을 하라고 하잖아요. 전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이걸 왜 하라는지 몰랐거든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잖아! 코 끝에 집중한다고 해서.. 근데 이걸 계속하다 보니까, 코 끝 감각 자체가 어떤 효과를 주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에게 주의를 빼앗겼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거,, 그래서 잠시라도 주의가 현재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 그니까 그게 코 끝에 느껴지는 들숨과 날숨의 감각인거구,,, 여기에 포커스 맞춰지도록 하는 거,, 빼앗긴 주의를 내 의지로 다시 찾아오는 거,, 그거 자체가 목적이고 효과인 걸 알겠는거야... 내가 평생을 가지고 산 내 ‘주의’라서 당연히 내 맘대로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내 주의가 실체도 없는 생각들에 자동으로 끌려다닌다는 것도 알게 됐고, 앞에 펼쳐지는 망상들, 기억들, 수많은 잡생각들을 100% 내 의지로 무시하고서 아무런 스토리도, 재미도 없는 호흡으로 데려 온다는 게  너무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거 있지” 


“그게,, 심리학 적으로는 전경과 배경 개념인 것 같아(전경과 배경 개념이랑 같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심리학 치료 중에 게슈탈트 기법이라는 게 있는데 이 기법의 목표를 진짜 간략하게 말하면 과거의 미해결 과제를 완성해서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고 지금-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하는 거거든. 정신분석 이론이나 이런 것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조금 더 집중하는 거에 비해 게슈탈츠나 현실치료는 과거에 이미 형성된 건 형성된 거고 그 틀을 수정하는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건강한 삶을 사는데 더 집중하자는 거지."


"언니 그런데,, 과거가 흘려보내지는 과거가 아니니까 계속 내 안에 남아서 다시 올라오고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게 해결되지 않는 이상은 계속 영향을 받는 거 아닌가?"


"현재가 전경이라면 과거는 배경이 되어야 해. 왜냐면 이미 지나간 것들이잖아. 그런데 가끔 우리는 과거에 어떤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즉 그저 배경에 머물러야 하는 것들이 불쑥불쑥 전경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을 경험하는 거야. 전형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 과거에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를 갈구했지만 아버지의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어. 직장생활을 하는데 나이가 좀 많은 권위자 예를 들면 팀장이나 책임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거야. 당연히 처음에는 팀장이나 책임 욕을 하는데 이게 반복되고 있다는 걸 통찰하는 거야.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팀장이나 책임의 인정에 지나치게 민감해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정해주지 않았을 때 화가 나고 공격성이 나타난다는 걸 깨닫는 거지. 이 경우 과거에 있었던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라는 배경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나와 팀장과의 관계라는 전경에 자꾸 개입하게 되는 거라고 볼 수 있어."


"아... 그러고 보니까 저두 딱 그랬던 것 같아요.. 회사 가는 게 너무 싫은데, 왜 싫은지 생각해보니 회사 가는 생각을 하면 불안, 두려움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 거야. 근데 언젠가부터 그게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데, 사실 상무님이 뜬금없이 나와서 업무 관련된 거를 막 물어보고 그랬거든요?  근데 내가 그 물음에 대답을 못하는 거 자체가 나한텐 너무 공포였던 거예요. 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나만 유독 무서워하더라고.. 그래서 왜 그런지 자꾸 생각해보니까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뭘 물어보면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을 대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확신은 못하겠는데 왜 무서운지를 생각하다 보니 어렴풋하게 그런 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외면하고 싶은데 의식 구석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낼랑말랑 하는 느낌.."


"응 맞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이럴 때 필요한 게 네가 말한 빼앗긴 주의를 의지로 다시 찾아오는 것일 거야. 전경과 배경을 명확히 구분해 내는 것. 전경에 머무르는 것. 즉, 현재 관계에 집중하는 거지. 첫 번째로 전경과 배경을 구분해 내는 게 필요하겠지. 네가 주의를 코에 집중해 보자, 내 주의가 분산되고 있다.라는 걸 구분하고 의식해야 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잖아.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게 내가 또 과거의 관계에 휩쓸려 가고 있었구나. 이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닌데.. 내가 또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었구나 난 더 이상 아버지의 인정이 필요한 아이가 아닌데..라고 구분하는 순간이 필요한 거지. 두 번째는 달아나려는 주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끝에 집중하는 것처럼, 과거의 감정에나 생각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는 힘이 필요해. 평소에 전/배경을 잘 구분하다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배경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거야. 구분한다 하더라도 머무르는 힘이 없다면 과거의 영향력이 강력만 한 큼 쏙 빠져들어가기 쉽겠지. 난 이 머무르는 훈련이 네가 지금 하는 마인드풀니스 훈련 같은 거로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해.” 


"언니 얘기 들으니까, 명상 효과가 더 명확해지는 거 같아.. 명상해보면 정말이지, 주의를 코 끝의 호흡 감각으로 데려오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 주의를 계속 유지시키는 게 진짜 힘들더라고.... 어찌나 이 놈의 주위가 잘 도망가는지.. 내가 이렇게 온종일 주의를 여기저기 뺏기고 사는데도 일상생활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 그래서 명상을 수련이라고 얘기하나 봐요! 훈련이고 수련이고.. 현재에 머무르는 힘을 키우는 정신의 운동이랄까..? 그런 느낌인데?!"





매거진의 이전글 통제받는 삶 - 현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