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억울하지 않아(영진의 여유)
사과 10개에 만원이요!
차를 운전해서 가다 보면 길거리에서 별의별 광고를 다 본다.
“사과 10개에 만원”
“이제 막 딴 찐 찰옥수수”
“체리 한 상자 만원”
“싱싱한 오렌지”
찰옥수수나 사과까지는 이해한다. 왜 시골 가는 왕복 2차선 도로에 체리나 망고 오렌지 같은 수입 과일을 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길가다 보이는 그런 광고들만 보면 자꾸 현혹이 된다... 차 세우는 것도 귀찮아하는 귀차니즘이 조금만 덜했다면 아마 길거리에서 물건 사느라 가산을 탕진했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이거 맛있어요?”
“말로 해봤자 어차피 안 믿을 거니까.. 일단 한번 먹어봐.”
“이렇게 10개가 만원이에요?”
“거기 쪼만한 건 10개에 만원, 여기 있는 게 15개에 이만원”
견물생심이라 하였던가... 싼 맛에 대충 아무 사과나 10개 골라 있는 걸 사고 가려했는데, 막상 눈앞에 더 실하고 때깔이 좋은 사과가 15개에 이만원이라 하니 자꾸 그쪽으로 눈이 간다. 뻔한 상술이다. 미끼 상품으로 일단 발길을 잡아 둔 다음에 진짜 팔고자 하는 상품을 내보이는 것. 클리쉐가 괜히 클리쉐겠는가. 뻔해도 사람들이 좋아하니 클리쉐가 되는 거고 뻔해도 자꾸 먹히니까 상술이라 하겠지.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이만원짜리 사과를 사서 차에 탔다. 그래도 우리는 두 명이서 산 거니까, 각각 만원으로 산거야. 안 그래? 합리화를 하면서..
살면서 나는 이런 일들을 참 많이 겪는다. 삶은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살다 보면 내가 예측했던 것보다 나의 자원이 훨씬 더 많이 소모가 된다. 한 번도 예상보다 적게 들어간 적이 없다. 2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시험공부는 4시간 5시간을 훌쩍 넘겨도 끝나지 않는다. 분명히 지하철 앱으로 따질 땐 40분이면 도착이었는데 실제로는 50분이 걸리곤 한다. 친구랑 딱 10시까지만 놀고 오려고 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12시다. 이번 달 발레 비용으로 딱 10만 원만 쓸려고 했는데, 장바구니에 결제하고 나면 10만 원 무슨.. 텅장이다 텅장.
지금보다 더 어리고 삶에 대한 경험이 없었을 때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만, 내가 계산한 대로만 될 거라 여겼다. 그래서 친구와의 약속도 타이트하게 잡고, 버스 시간, 지하철 시간도 항상 촉박했으며, 한 달의 용돈 계획도 늘 빠듯하게 흘러갔고, 시험 전날에는 나 왜케 공부를 안 했니... 자책하고 울며 공부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바로 흔히 말하는 ‘치기’가 아니었나 싶다. 모든 게 내 계산대로 딱딱 맞아질 거라는... 그래서 그 계산의 아다리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화나고 억울하고 당황하는..
세상을 살아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도식도 달라졌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는 항상 자원을 소비해야 하는데 본래 값어치의 오차 범위 +10%를 붙여야 안전하게 살 수 있다. +10%를 예상하지 못한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게 돌아간다.
“엄마, 아까 갈치 산거 너무 비싸지 않았어?”
“원래 그런거셔. 때깔이 좋으면 그 정도 값은 받아야제.”
이상하긴 했다. 집에서는 전기세 나간다고 쓰지 않는 코드도 빼놓으라는 아빠는 늘 큰 나갈 때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았다. 괜히 냉장고 문을 열어 놓거나 쓰지 않는 방 불을 켜고 있으면 득달같이 와서 끄던 엄마가 시장에서는 그리도 대범할 수 없었다. 아마도 부모님 역시 어느샌가 나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Extra 페이에 초연해지신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예전보다는 훨씬 여유 있고, 덜 당황하며 살아가게 된 것 같다. 뻔한 상술이지만 알고서도 넘어가는 것처럼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현금 2만원을 들고 가판대로 물건을 구경하러 간다. 예정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떠나고, 서류 준비는 미리미리 해놓으려 노력한다. 공부하는 시간도 여유 있게 잡아 놓으며, 아다리가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나도 세상이라는 걸 경험하다 보니 세상에 조금은 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