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g O Aug 08. 2022

꿈만 꿔도 개이득

이루고 싶은 소망인 '꿈'이 아니라 수면 중에 꾸는 '꿈'입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것들은 점차 사라져 가는 것 같다. 하지만 거의 매일 하게 되는 비생산적인 일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꿈을 꾸는 일 아닐까. 이 글은 꿈도 생산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어필하는 글에 가깝다.



꿈을 '안 꾸는 사람'과 '자주 꾸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꿈을 '잘 기억하는 사람'과 '바로 까먹는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꿈을 잘 기억하고 싶다. 기억했다가 활용하기 위해서다. 꿈이 그렇게 쓰임새가 좋은 도구는 아닌데 활용을 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누군가는 꿈을 로또를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쓰고, 누구는 그날 하루의 일진을 예측하는데 쓴다. 꿈으로 주변 사람의 안부를 걱정하기도 하며, 주변의 누군가에게 아이가 생겼는지를 알아내기도 한다. 내가 꾼 꿈을 점집에도 들고 간다. 그런가 하면, 꿈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명 '개'꿈이라고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활용을 하던 무쓸모로 취급하던 어느 쪽도 상관은 없다. 어떤 선택도 삶에 드라마틱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다(로또 당첨은 예외로..). 



다만 꿈에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여함으로써 생각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게 하고 나아가 말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하는 사람들. 심리학자들에 의해 깊게 연구된 꿈의 심리적 '기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꿈 활용은 주로 심리학의 대가인 '프로이트'나 '칼 융'의 꿈 이론에 바탕을 둔다. 꿈 이론에서 말하는 꿈의 기능 중 하나는 자아가 균형을 잃고 있을 때 그걸 예민하게 눈치챈 무의식이 '꿈'을 통해 균형을 맞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며 점차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꿈은 내가 모르는 나인 무의식과 더욱 가까워지는 통로니까.



회사를 다닐 때는 꿈을 심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라고 1000% 믿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왜 꿈이 기억나지 않는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에서야 겨우 알겠다. 왜 꿈을 기억하지 못했는지. 내가 스스로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내면이 건네는 말을 '잘 못 듣는' 상태였다. 회사원의 생활을 버티는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사 후에는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고, 생각할수록 '똑바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신기하게도 그런 열망이 생겨날수록 꿈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어떤 꿈들은 그야말로 개꿈 같아서 잠시 기억했다가 그대로 잊어버리는 꿈들이었고, 어떤 꿈은 오래도록 남아 몇 달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되기도 했다. 후자에 해당하는 꿈들이 오랜 시간 기억되는 것은 대체로 그 내용의 불쾌함, 공포감, 혐오스러움, 께름칙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꿈이 몇 개가 쌓이면 그 꿈들의 공통점도 보였다. 이를테면 그런 꿈엔 항상 혐오스러운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꿈이 끝나는 점 등. 



처음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할 때는 불안했다.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는 건지,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실은 마음이 위험한 상태인 건 아닌지.. 하지만 그런 꿈들을 계속 품고 곱씹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면서 공을 들이면 어느 날 불현듯 그 의미가 풀렸다. 물론 전문 분석가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나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꿈의 내용이 얼마나 끔찍하고 혐오스럽든 간에 나에게 해방을 주는 의미로 해석이 됐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던 어떤 사건들, 그 사건에 의해 생긴 관념들. 그런 것들에서 조금씩은 벗어나 졌다.



기억나는 꿈 중 하나를 가지고 얘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 '미사일 꿈'이라고 이름 붙인 꿈이다. 

내가 어떤 건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멀리서 미사일이 날아온다.
가까워질수록 그 미사일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잠수함만 한 크기의 미사일이었다. 혼비백산하여 건물들 사이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숨는데, 다시 하늘을 보니 미사일이 한 대가 아니라 두대, 세대가 연이어 나에게 오고 있다.
아무리 피해도 피할 수가 없다. 알고 보니 그건 유도 미사일이어서 내가 어디로 피하든 나를 향해 돌진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사일이 죽일 듯 날아와서 나에게서 터지는데 희한하게 나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미칠 지점은 '미사일에 맞는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미사일이 내게 와서 터지기 직전의 '공포감'만 '반복적'으로 느끼는 데 있었다. 미사일을 맞고 죽어버리면 끝날 텐데 죽지도 않는 바람에 그 공포를 피할 길이 없었다. 피해지지 않는 데다 죽어 없애는 것도 불가능한 공포감.
그때 어떤 여자가 내 손을 잡아끌고 방공호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내게 물었다.
"왜 미사일이 너한테 날아가는지 알아?"
"아니 몰라"
"그거 어떤 여자가 계속 쏘는 건데 너한테 화장품 팔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면서 화장품 목록과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보여줬다. 그걸 나한테 팔려고 그 난리를 치는 거라고 했다. 꿈에서도 어이가 없었다.
 "고작 화장품을 팔려고 미사일을 쏜다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공호 안에는 나와 같이 미사일의 폭격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심리 분야에서 꿈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에 의하면 무의식의 메시지인 꿈을 해석하는 건 마치 외국어를 번역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번역하듯 꿈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단어와 문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 전문가들이 수십 년의 수련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그렇게 수련을 해도 꿈 분석은 늘 쉽지 않다고. 하지만 얼마 전 학회 세미나에서 한 분석가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했다. 꿈을 꾸는 자는 스스로 자신의 꿈을 해석해낼 수 있다고. 심지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나의 미사일 꿈을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다. 나는 전문 분석가가 아니라 꿈의 언어를 예리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속 품고 생각하다 보니 이 꿈의 방점은 '나를 폭격하는 미사일'이 아니라 그토록 공포스러운 미사일의 실체가 고작 '화장품을 팔기 위함'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미사일 자체가 중요했던 거라면 그 뒤에 꿈의 내용이 그렇게 어이없게 이어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줄줄이 고구마처럼 딸려온 기억은 과거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었다. 그때마다 과도하게 겁을 먹었던 나의 태도 같은 것들도. 그런 태도 때문에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겁을 먹고 있는 대상이 고작 '화장품을 팔기 위함'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별거 아닌 것인 줄 알았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아다마스' 3화에서, 주인공 지성은 허성태를 향해 이런 대사를 날린다. "(당신이 내게)이 새끼, 저 새끼 아무리 하셔도 사람의 본성은 말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본성을 정의하는 건 선택하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때 그 사람의 트루 컬러가 정해지죠."



누군가 이 미사일 꿈을 꾼다면 그저 개꿈이라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아니면 그 강렬함에 한동안 불쾌한 기분에 휩싸여 있다가 일상 속에 금방 잊을 수도, 로또를 살 수도, 그날 하루 신중한 걸음을 디딜 수도, 혹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심하라는 말을 전할 수도 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며.. 또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 분석가와 함께 꿈을 자세히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런 끔찍한 미사일들이 내 머릿속에서 터졌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나는 굳이 기억해내고 기록하고 오래 품고 생각하기로 선택했다. 꼭 꼭 묻어둔 상처를 돌보고, 그로 인해 생긴 쓸데없는 죄책감을 버리고,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놓아버리는 등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데 꿈을 활용하기로. 그래서 더욱더 내가 되기로. 그건 나의 트루 컬러를 내가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단지 꿈 하나와 글 몇 줄로 말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과정은 아니겠지만. 



퇴사 후 꿈을 기억하게 되면서 내가 알게 된 건 '꿈과 함께 사는 삶은 여러 모로 개이득'이라는 거다. 꿈을 꾸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노력하면 꿈을 기억할 수도 있는 데다가, 그 꿈이 진정 무의식의 메시지라면 그 메시지는 나를 도와주면 도와줬지, 내게 해가 될 리 없다. 무의식은 나를 '위한' 또 다른 나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내꺼인 듯 내꺼 아닌 것 상실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