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될 결심
ROTC( R eserve O fficers' T raining C orps 또는 Reserve Officer Training Corps)는 미국의 장교 양성과정의 하나로 직역하면 '예비역장교훈련단'
학군단이라고 한다. 학생군사교육단. 여기서 시작되었고, 여기서 끝났다. 인생 1막.
육사를 보내라고 하셨다. 고2 담임선생님은 모교 선배이자 스터디서클 선배였다. 토요일 오전까지 수업을 하던 시절.
2층 교실 창문을 통해 하교하는 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창하던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더니 비가 억수로 내기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 없던 비라 우산을 든 녀석들은 없었다. 가방을 뒤집어쓰고 교문을 향해 천둥벌거숭이 같은 남자아이들이 쏟아져 나갈 때 아무런 동요 없이, 같은 보조, 같은 속도로 비를 맞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한 녀석.
다음날 엄마는 담임선생님 면담 요청에 처음으로 학교에 오셨다.
‘육사 보내세요’
엄마는 내심 기뻤을 거다. 어릴 적 여고생 시절 엄마가 동경하던 생도의 모습. 버스 손잡이를 잡고 미동도 없는 제복. 자주 들은 건 아니지만 나도 그 모습을 상상하며 끌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성적에 여유가 좀 넉넉했고, 타고난 얇은 손목과 다 잘할 수 있다는 근자감이 극복하지 못한 턱걸이 때문에 진로에서 지웠다. 그 대신 당시 한창 떠오르던 경찰대학이 목표가 되었다. 경찰이 되고 싶었냐고? 아니. 고교시절 내내 (형 때문에) 시끄러웠던 집을 떠나 멀리 기숙사 있는 학교에 가서 집에 손 벌리지 않고 대학을 다니고 싶었다. 제복에 대한 미련은 여전했다. 입학 후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율사가 되려는 비틀린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수학이 약했던 터라 국, 영, 수 과목만 미리 치르는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커다란 교무실 중앙 칠판 오른쪽 위편엔 하얀 분필로(노란색이었나?) 내 이름과 친구의 이름이 ‘경찰대 합격’이라는 문구와 함께 적혀있었다. 2차 체력장과 면접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 3차에서 떨어졌다. 당시 3차 시험은 학력고사 당일,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로 경찰대에서 시행되었다. 떨어지면 재수다. 후기로 법대에 지원하긴 했지만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함께 떨어진 친구는 후기로 H대 공대에 합격했는데 다음 해 다시 시험을 봐서 지금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아쉬움이 남는 재수생활이었지만 흔히 말하는 명문대 통계학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의대 쪽에 있는 하숙집에서 1학년을 보냈고, 2학년이 되니 병역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제일 친한 친구가 함께 R.O.T.C. 에 지원하자고 권했다.
그래, 나 육사 갈 녀석이었지. 이성적이지 못한 운명론적 억지 논리가 너무나 명쾌하게 날 이끌고 있었다. 우스운 예기지만 하숙집 메이트였던 의대 누나의 걱정도 한몫 거들었다. 나처럼 얼굴 하얗고 조용한 애들이 군대 가서 이상한 선임들에게 이상한 짓을 당하는 일이 많다고. 내용의 진실성보다는 누나의 진심이 걱정을 키웠다. 일단 지원서를 넣어보자. 학점이 안 좋으니 떨어질 수도 있었다. 떨어지면 그냥 가자. 제복에 대한 열망 덕인지, 가스라이팅 덕인지 합격. 함께 하자던 친구는 2사단 조교로 병역을 필했다. 재수 후 취업이 무난한 과를 택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전공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다시 운명이라는 패를 꺼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반장, 회장을 도맡아 했으며, 보이스카웃과 학생회 등 단체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리더십이 탁월한 놈. 육사를 마다했지만 경찰대에 붙을 뻔했던 준비된 놈. 삶이라는 식빵의 첫 장이 토스터에 들어가는 순간. 내 군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