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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경화 Apr 15. 2020

엄마, 그리고 <무릎딱지>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어제는 엄마의 여든 네번째 생신이었다. 오랜만에 엄마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손자와 손부까지. 

다른 도시에 살아서 일년에 네댓 번밖에 뵙지 못하는 엄마는, 최근 뵐 때마다 점점 쪼그라들어가시는 게 보인다. 특별히 진행되고 있는 병은 없고, 아직은 부축을 받으면 걸어도 다니시지만, 점점 생기를 잃어가시는 모습에 뵐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때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로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까칠한 남편으로 평생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셨던 아버지가 떠나신 후, 엄마는 눈에 띄게 늙어가고 있다. 

자리가 파한 후, 언니들과의 카톡방에서 앞으로 이런 자리가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생각하며 속상해했다. 생신파티는 정말로 몇 번 안 남았을 것이다. 이번 추석, 내년 설, 내년 아버지 제사... 그리고 내년 생신... 우리는 엄마와 추억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엄마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 어떻게 도와야 할까. 아니, 내 마음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 절대로 읽어주지 못하는 그림책이 또 있다.

샤를로트 문드리크의 <무릎딱지>(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이경혜 옮김, 한울림)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 냄새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문을 꼭꼭 닫아두고, 아플 때 위로해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무릎에 입은 딱지를 자꾸 손으로 떼어내는 아이의 이야기. 읽으면서 내가 너무 눈물이 나서 아이들에게 도저히 읽어줄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실 때도 그렇게 눈물이 났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그 아침이 떠오르고, 점점 쪼그라드는 엄마가 떠올라서 이 책만 잡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4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무릎에 앉은 딱지를 떼어내는 아픔이야 대수겠는가 그보다 더한 상처라도 내지.


아직도 힘들면 엄마에게 하소연하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쉰살 넘은 막내에게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어제 하셨던 얘기도 잊어버리고 또 하시고, 오늘 아침에 약을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도 기억을 못하시고, 여기 저기 아픈 곳 하소연만 하신다. 가끔은, 아니 자주, 나는 짜증이 난다. 1분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철저했던 우리 엄마, 군인이었으면 장군까지 하셨을 거라고 큰소리치시던 우리 엄마, 속상한 내 마음을 나보다 더 먼저 알아채던 우리 엄마는 어디 가고 허리 굽고 귀 멀어가는 노인 한 사람이 수화기 너머에서 자꾸만 딴소리를 하신다. 무릎의 생채기로 예전의 엄마를 찾을 수만 있다면 매일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릎딱지>의 아이는 모르는 사이에 무릎의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았다. 다행이다. 그래도 나는, 무릎의 생채기가 영원히 계속되더라도, 엄마가 이대로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옛날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매일 하소연하고, 매일 아기가 되어가는 노인네 엄마라도, 내년 생신, 그다음 생신을 계속 우리 곁에서 맞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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