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범경화 Apr 15. 2020

<빨강 : 크레용의 이야기>

마이클 홀 지음, 봄봄출판사

빨강이라는 이름의 크레용이 있었다. 크레용이란 자고로 그 이름값을 해야하는 법. 그러나 빨강이는 그 이름값을 못한다. 빨강이가 그리면 불자동차도 이상하고 딸기도 이상하다. 친구와 함께하면 좀 나아질까 하지만 노랑과 함께하자 초록색 오렌지가 그려지고 만다. 주변 크레용들은 어떤 이는 비웃고, 어떤 이는 게을러서라고,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비난하며, 어떤 이는 기다리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빨강이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자 크레용의 친구들인 문방구들이 나선다. 테이프는 부러져서 그런가보다 하며 꽁꽁 사매고, 가위는 너무 낀다고 생각해서 살짝 잘라내고, 연필깎이는 너무 뭉툭하다고 생각해서 깎아낸다. 모두가 '도와'주었고, 빨강이도 노력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다 만난 새 친구. 그는 빨강이에게 바다를 그려달라 한다. 못하겠다는 빨강이를 '그냥 한 번 해봐!'라고 격려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바다, 청바지, 청초롱꽃, 파랑새, 블루베리, 파란 고래... 

알고 보니 빨강이는 파랑이었던 것이다. 주변 크레용들은 말한다. 기특하다고, 정말 잘 그린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라고, 재능이 하늘을 찌른다고.


색깔테라피 수업준비를 하다 도서관에 놀러 온 대학생 제자에게 이 책을 읽어주게 되었다. 이 아이는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던 아이였다. 옛날 생각하며 추억에 젖어 읽어주었는데, 갑자기 빨강이에게 게으르다고, 노력이 부족한거라고 주변에서 비난하는 장면 즈음부터 아이의 눈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당황하면서 그러나 애써 외면하면서 끝까지 읽어주고는 

"어때? 선생님 이걸로 수업하려고. 색깔테라피 비슷한 그런 거. 아이들이 공감할까?"

했더니, 갑자기 

"선생님, 이 책은 아이들 말고 엄마들 불러 수업하세요."

라고 말한다. 


이 아이는 ADHD였다. 비교적 일찍 진단을 받고 약을 먹어서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어 보였는데 속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단다. 약을 먹지 않으면 특수학급에서 수업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처럼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불안했고, 어쩌면 남들 눈에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는데 자기에게 티를 안 내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고 했다. 뉴스에서 조현병 환자의 범행이 나오면 자신은 조현병이 아님에도 불안했고,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될까봐,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자기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볼까봐 또 많이 움추러들었다고 한다.

대학에 합격한 후 약을 먹지 않았더니 수업을 제대로 듣기 힘들었고 음식조절이 되지 않아 살이 많이 쪘단다. 그러나 몹시 행복했단다. 약을 복용할 때는 늘 초조하고, 음식맛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약을 먹지 않으니 남들이 보기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단다. 어딜 가나 밝고 명랑해서 해피바이러스로 불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어찌나 잘해서 동네 경비원이며 할머니들이 모두 칭찬하는 아가씨가 되었다. 

물론 미리 준비하는 영역이 약하다 보니, 취업준비도 안되고 학점은 바닥이고 남들보다 더 신나게 일하다가 더 일찍 지쳐서 그만두고 하는 일들의 반복이긴 하다. 친구나 주변인들에게 과하게 잘하고, 본인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해 서운한 일 투성이다. 내 아이라면 확실히 걱정이 좀 되긴 할 것 같은데, 가끔 보는 나로서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제자이다. 워낙 책을 안 읽어서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 외에는 책을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선생이랍시고 이렇게 오래 나를 찾을 줄은 당시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이는, 자신이 요즘 세상에 살기 때문에 진단을 받고 약을 먹어야 했던 거라고, 석기시대에 살았더라면 넘치는 창의력으로 여장부가 되었을 것이고, 알프스에서 태어났더라면 알프스소녀 하이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알고 보면 파랑인데 이 시대에 사느라 누군가는 자기에게 테이프를 붙이고, 누군가는 가위로 자르고, 누군가는 자기를 깎아내는 거라고. 그 덕에 빨강이들만 가는 대학은 갔지만 그러나 빨강도 아니고 파랑도 아니고 보라색 언저리에서 위장하며 살고 있다고 깔깔댄다. 

웃으면서 말해서 참 예뻤다. 학교는 아이가 파랑이든 노랑이든 빨강옷을 입으면 빨강으로 키워내는 곳이 되곤 한다. 도서관에서라도 최소한 '괜찮아. 빨강이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빨강을 강요하는 곳이 되어버리지는 않는지 늘 나 자신을 점검한다. 담임선생님은 30명의 아이들을 살피지만 난 800이 넘는 아이들을 살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가끔 변명하곤 하지만, 남들은 속여도 나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그렇게 하는 게 더 편해서 나도 그렇게 되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나의 스승인 그 아이 덕분에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본다. 빨강은 빨강으로, 파랑은 파랑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기를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색깔 손님>,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