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그리스신화
아폴론은 참으로 사랑이 많은 신이었다. 아폴론의 마음은 여성뿐 아니라 소년에게도 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과 소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동성애 관계는 신뢰와 동지애로 간주되어, 여성과의 사랑보다 숭고한 가치를 지녔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 덕분에 그리스 신화에는 동성애 이야기가 여러 편 전해지는데, 모두 동성애를 금기시하지 않는 그리스인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아폴론은 연애에서만은 운이 따르지 않는지 소년들과의 연애도 어째서인지 항상 슬픈 결말을 맞이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히아킨토스(Hyakinthos)와의 사랑 이야기가 유명하다.
히아킨토스는 아폴론을 연모하는 미소년이었다. 아폴론도 히아킨토스를 총애해 소년이 살던 스파르타(Sparta) 인근의 아미클라이(Amyclae)까지 가서 함께 사냥과 운동 경기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하필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yros)도 이 미소년에게 연심을 품고 있었기에 아폴론과 소년의 돈독한 사이를 시샘했다.
아폴론과 히아킨토스가 원반던지기를 즐길 때 비극이 일어났다. 아폴론이 던진 원반을 잡으려고 소년이 정신없이 달려가던 찰나, 둘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제피로스가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날아가는 방향이 바뀐 원반은 히아킨토스의 이마에 명중했고, 소년은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소년이 자신이 던진 원반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본 아폴론은 비통하게 절규했다.
“할 수 있다면 나도 불사의 몸을 버리고, 네 뒤를 따라 함께 저승으로 가고 싶구나!”
아폴론은 구슬피 목 놓아 울었다.
“나를 위해 살다 나와 함께할 수 없게 된 너는 꽃이 되어서라도 영원히 내 사랑을 받으리라.”
히아킨토스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에서 히아신스 꽃이 피어났다. 히아신스라는 꽃 이름은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유래했다.
히아킨토스 이외에도 아폴론과 비극적 사랑을 나누었던 젊은이가 있다. 그리스어로 사이프러스(kyparissos, 키파리소스)라 부르는 측백나무도 아폴론에게 사랑받던 비운의 젊은이가 모습을 바꾼 나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케아 섬(Kéa, Keos, 키오스 섬)에 살던 미소년 키파리소스는 자신을 따르던 암사슴 한 마리를 애지중지하며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키파리소스가 던진 창이 나무그늘에 몸을 숨기고 쉬고 있던 사슴을 맞히고 말았다. 사슴이 죽자 아폴론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키파리소스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신이시여, 영원토록 사슴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소년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을 받은 건지,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슴을 따라 저세상으로 갔다. 소년이 묻힌 무덤 위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는데, 그 나무는 슬픔을 상징하는 측백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폴론의 연애는 대개 비극으로 끝났다. 아마 누구나 우러러보는 미모를 지닌 동시에 앞에 서기만 해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릴 만큼 무서운 신이었기에, 그의 사랑을 기쁨보다 공포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