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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찻잔 Oct 24. 2021

홍차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운, 혹은 행운에 관하여

권고사직 협박으로 시작된 박졸렬과 홍차의 졸렬한 눈치게임이 세 달이 다 되어서야 박졸렬은 사태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며칠만 괴롭히면 홍차가 순순히 주먹구구 연구소를 떠날 거라 생각하며 이 일에 대하여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의 조막만 한 두개골에 홍차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뭐, 홍차도 딱히 그의 머릿속에 있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서, 세 달하고도 하루가 지난 그날, 박졸렬은 복도에서 자신을 보며 아침 인사를 건네는 홍차를 보고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를 보고 놀란 건 홍차도 매한가지였다. 


소장님... 절 잊으셨나요..?


박졸렬은 책임감 없는 어른이 할 만한 행동을 취하며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바로 남에게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는 이부조 팀장을 시켜 홍차의 심경을 알아오라 시켰다. 그렇다. 박졸렬은 자신의 변덕으로 지난 세 달간 업무에서 배제된 채 텅 빈 컴퓨터 화면만 바라봐야 했던 직원의 심정을 남의 도움 없이는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등신이었던 것이다.


"자기,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어느 시대에도 유행하지 않았을 것 같은 호피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이부조가 말했다. 그녀는 주먹구구 연구소의 까마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행이나 당혹스러움의 불길한 전조였다. 만신창이가 된 남의 거죽을 쪼아 먹으며 기쁨을 느끼는 것도 이부조와 까마귀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자기 지금 업무 배제된 거! 소장님이 너무 마음 아파하셔."


홍차는 기가 막혀 마음속 말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소장님이 왜 마음이 아프세요? 마음 아픈 건 전데요."


네? 누구 마음이 아프다고요?


홍차의 분노 어린 솔직함에 이부조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할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자기가 딸 같아서 그래. 엄마 같은 마음으로 홍차씨랑 얘기를 하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 응?"


홍차는 애를 낳기는커녕 결혼도 안 한 이부조가 자꾸 모녀의 알레고리를 들먹이는 것이 당황스럽다 못해 불쾌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여성을 묶을 수 있는 사회적 단위는 어머니와 딸밖에 없는 듯했다. 좆도 없는데, 가좆같았다.


이부조가 두서없이 늘여놓은 이야기는 결국 '더 난리 피우지 말고 나가라'는 말이었다. 반복되는 헛소리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홍차는 이부조의 단조로운 목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지난 수개월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남들은 찬란하다고 하는 이 청춘이 박졸렬 같은 상사와 최동탁 같은 남자만 만나다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홍차는 너무나도 아찔했다.


하지만 동시에 홍차는 석사 논문을 작성하며 기득권과 기성세대를 마음껏 비판했을 때 느낀 희열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젊음을 함부로 여기고 창조적 에너지를 이익창출에만 이용하는 그들의 졸렬함과 아둔함이란! 


이젠 비웃고, 냉소하며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것에 그칠 수 없게 되었다. 이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지식을 실천(knowledge in practice)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상을 향한 치기 어리고 어정쩡한 반항이 아니라, 불의에 대항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넘을 수 없는 허들처럼 높은 이 관문을 어떻게든 넘어서야만 자신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홍차는 그때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홍차의 깨달음은 어디까지가 자기 주도적이고, 어디까지가 신자유주의적 소비주의의 잔혹한 희망 고문일까?

이부조와의 비생산적인 대화를 끝으로 홍차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구석에 항상 찌그러져 있어 그 누구에게도 존재감을 나타내지 않던 마관우 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홍차씨, 절대 그냥 그만두지 마요."


마선생은 홍차와 마찬가지로 지식과 앎의 달콤한 함정에 빠진 죄로 주먹구구 연구소에 표류하게 된 외로운 영혼이었다. 마선생의 한 마디는 홍차의 타오르는 분노를 모은 돋보기 렌즈였다. 정해진 방향 없이 사방으로 내뿜어지던 열에너지가 티 없이 맑은 볼록 렌즈를 통해 정확히 한 점에 모여 미약하게나마 종이를 불태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홍차는 그날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홍차는 박졸렬과 대리석, 정준한 그리고 이부조는 물론 그녀가 증오하는 그 모든 것을 향해 거대한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어 올렸다. 결과가 어떻든,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홍차는 그녀의 20대에게 당당히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승리를 바라며 기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다가올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고자 기도했다고 한다. 홍차를 위하여 과연 종은 울리는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홍차는 더 이상 정말로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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