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찻잔 Jan 05. 2022

홍차의 선택

[에필로그]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합의, 그리고 퇴사에 도달하기까지

내가 홍차를 다시 만난 건 불과 며칠 전 H 백화점에서였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는 그녀는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겠다는 선택을 한 이후 그녀의 삶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아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홍차의 근황을 전하고자 한다.




1.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결국 주먹구구 연구소를 떠났다. 연구소에 오래 남아 무능한 박졸렬 소장을 비롯한 윗대가리들을 갈아치우고 내가 소장이 되길 바라던 가족들과 친구들, 동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 대신 박졸렬의 졸렬한 행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하였고, (신고 취하를 조건으로) 대략 9달치 월급에 상응하는 “퇴직금 겸 위로금”을 받았다. 액수에 관하여 얼버무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냥 말하겠다. 문제가 된다면 알아서 흘려들으시길.


글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겠지만 박졸렬과 그의 맞춤 발 닦개 3 인(대리석, 정준한, 이부조)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쫓기는 꿈을 꾼다는데, 나는 정반대였다. 꿈에선 난 이들을 쫓곤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드디어 뒤통수에 한 방 갈길 수 있겠다 싶으면 잠에서 깨버리는 것이다. 정말 엿같았다. 주먹구구 연구소를 나오고 난 후 난 꿈에서 드디어 이 네 명을 흠씬 두들겨 팰 수 있었다! 위로금도 위로금이지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 너무 행복하다.


SWEET


2. 신고 후 박졸렬의 태도는 어땠는지 말해줄 수 있는가?


박졸렬은 누군가가 감히 자신의 실책을 지적하리라는 상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물이다. 신고를 할 거라고 경고했을 때도 그는 콧웃음을 치며 '괴롭힘을 당했더라도 그걸 신고하는 직원은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했다. 나도 당시엔 너무 화가 나서 '그게 아니라 직원을 괴롭히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솔직히, 우리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나는 그의 아둔함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생각 좀 하고 말합시다 (주어 없음)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노동청 통보가 박졸렬의 생일날 가게 되었다. 온 우주가 박졸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있었던 거라 믿는다. 통보가 간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노동청 감독관에게 공문을 보내라는 둥 헛소리를 하여 감독관이 기가 막혀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그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한다.


박졸렬과 짧지 않은 시간 같이 일하면서 파악하게 된 것은 그는 강한 사람에겐 약하고, 약한 사람에겐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고 이후엔 예상보다 훨씬 쉽게 일이 진행되었다. 일단 정말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민망할 정도로 벌벌 떨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심하게도 박졸렬은 끝까지 '미안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사과는 못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요즘 초등학생도 이런 낯 뜨거운 사과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조직의 장이 이런 수준 낮은 태도를 취하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3. 권고사직을 강요했을 당시 박졸렬이 재갈을 문 개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는데, 그 배후엔 누가 있었는지?


'홍차' 이야기의 최대 반전이자 비극은 박졸렬이 나를 괴롭힐 만한 의지나 지능이 없었다는 것이다. 재미를 위해 박졸렬을 최종 빌런으로 각색하긴 했지만, 사실 배후엔 새로 들어온 직원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고 싶어 하는 대리석과, 가장 오래된 직원임에도 자기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다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이부조(a.k.a. 마담 부조-리)의 역할이 컸다. 특히 대리석은 이간질과 거짓말을 먹고사는 괴물 같은 존재였는데, 인생에서 이런 질 나쁜 사람을 다시 만날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합의를 위해 나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눌 때 박졸렬은 나에 대한 과도한 감시와 부당한 업무 배제가 대리석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모두 실토했다. 대리석은 악인이긴 했지만 그녀 자신만의 의도와 동기, 뒤틀어진 논리 구조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박졸렬은 그 어떤 의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될 때만 발작을 일으키는 자동인형 같았다. 나는 박졸렬을 보며 마치 동료가 머리가 떨어져 죽었음에도 자기 갈 길을 가는 개미떼를 볼 때와 같은 혐오감을 느꼈다.


난 아직도 대리석이 날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냥 속 편하게 내가 너무 잘나서 질투가 났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4. 주먹구구 연구소의 근황은?


내 알 바 아니다. 부디 좋은 사람들은 그곳을 빨리 빠져나오길 바란다.


5. 신고와 합의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보복이 두렵긴 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여러 가치와 상응했다. 자기 통찰이나 조직 발전을 위한 건설적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는 미성숙한 인간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엿이나 먹으라는 것뿐이고, 지금도 이와 관련해서는 변함이 없다.


사실 엿 먹으라는 말보다는 이런 게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다른 상황이었더라도 옳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자연스레 묻게 된다. 주먹구구 연구소에서의 경험은 (완전 날림으로 썼던) 내 학사 졸업 논문의 주제를 되짚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박졸렬을 신고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일명 '사이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일단 가정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어린) 여성이라는 점이 컸다. 아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큰 결단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었다는 거다.


결국 내 결정은 사회적 정의에도 가격표가 있다는 걸 상기시키고, 내가 마신 '사이다' 한 모금은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 내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이렇게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여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6.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어렸을 때 한참 '마시멜로 실험'이라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마시멜로를 하나 보여주고는 아이에게 기다리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약속하여 이를 지키는 아이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다소 교훈적이고 따분한 이야기다.



난 보상을 기다리던 아이였다. 칭찬받는 것이 좋고,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을 수 있으니까. 근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보상을 기다리기는커녕 '나한테 보여준 게 마시멜로가 맞긴 함? 그냥 마시멜로 모양 지우개 아님?' 이러는 삐딱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먹구구 연구소를 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주먹구구 연구소는 지우개를 마시멜로라고 강요하며, 마시멜로라고 하지 않는 사람을 질 나쁘게 괴롭히는 곳이었으니까.


이제 난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지 않더라도 내가 먹고 싶을 때 마시멜로를 먹고, 아니, 마시멜로는 이제 질렸으니까 초콜릿을 찾아 먹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가 주는, 혹은 주겠다고 약속한 마시멜로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읽든 말든 간간히 웃긴 글도 쓰면서 말이다.



7. 최동탁씨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독자가 많았다. 사생활에 대하여 질문해도 되겠는가?


최동탁씨는 단연 2021년 MVP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황당한 일이 몇 번 더 있어 글로 남길까 생각도 했지만 도저히 최동탁을 뛰어넘는 사람은 없어 쓸 수가 없었다. 그는 박졸렬과는 다른 의미로 내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두 사람 모두 사회적 합의와 다른 이를 향한 폭력을 금지하는 (...) 법, 인간의 이성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를 깨닫는 날이 오길 바란다.


어딘가엔 세상을 향한 나의 분노와 독특한 유머관을 이해해줄 사람이 있으리라 믿는다. 왠지 올해는 예감이 좋다.





나와 대화를 끝낸 후 홍차는 가느다란 팔에 쇼핑팩을 주렁주렁 매달고 총총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홍차에게도, 그리고 (박졸렬과 그의 전용 발 닦개 3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2022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홍차의 이야기를 읽어준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말하고 싶다. 정말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홍차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