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삶의 #해시태그를 새기다
아동문학가 말글손 時人 장진석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억새의 향기에 문득 걸음을 멈춥니다. 시원한 바람 끝에서,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들판의 황금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학창 시절의 풋풋한 낭만에서 중년의 아스라한 추억까지, 삶의 모든 계절이 이 가을 앞에 펼쳐집니다. 이 가을, 아흔둘 어머님의 시간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보며, 제 삶의 마지막 페이지는 어떨까 고민합니다. 인생의 #해시태그. 책 속에서 길을 찾고, 펜 끝으로 마음을 새기는 순간, 우리 인생의 반짝이는 해시태그입니다.
#봄이었다.
세상에 첫눈 뜨던 그때, 저는 이제 막 돋아나는 여린 새싹과 같았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하루의 소소한 일을 일기장에 적곤 했습니다. 도서관의 낡은 나무 서가에서 만난 동화책의 마법에 푹 빠져 밤늦도록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선합니다. 책 속 세상은 저를 단숨에 사로잡았고, 그 설렘은 작고 여린 씨앗처럼 마음에 심겼습니다. 주인공의 모험에 함께 웃고 울며, 상상 속에서 수많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는 메마른 마음에 단비가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독서는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저를 이끄는 첫걸음이었지요. 흙냄새 섞인 봄바람처럼 싱그러웠던 유년 시절, 글자가 빚어내는 무지개빛 세상에 매료되었고, 동화 작가로 사는 지금도 봄날의 독서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순수했던 시절, 책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처음 만났고, 그것은 제 삶의 첫 번째 #해시태그가 되었습니다. 독서가 제 삶의 물꼬를 튼 첫 순간이었다면, 삐뚤빼뚤 일기장에 옮겨 적던 단어들은 그 물꼬를 타고 흘러가는 첫 문장이었지요.
#여름이었다.
청춘의 열정이 타오르던 시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쌓으며 부딪히고 깨졌습니다. 혼란스러웠고, 때로는 좌절했지만, 그때마다 책은 제게 흔들리지 않는 등대였습니다. 격정적인 파도 속에서도 침착하게 길을 알려주는 등대처럼, 책 속의 수많은 글귀는 저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책을 통해 길을 찾고, 스스로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 미지의 길을 헤맬 때, 책 속의 현자들에게 지혜를 구했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글 속의 주인공들에게서 위로와 용기를 받았습니다. ‘말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글로 나만의 생각을 남기고, 손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말글손 時人(지금 이 순간 진심을 다하는)의 삶을 살아보자 마음먹은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강사이자 작가, 공동체 활동가, 문화 기획자로 살아가는 제 삶의 모든 방향타는 이 여름날의 독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름날의 글쓰기는 뜨거운 땀방울처럼 생각의 열매를 주었습니다. 응어리진 이야기를 토해내듯 글을 쓰면, 답답했던 마음이 뚫렸습니다. 고민의 밤을 새운 후 새벽녘에 글을 쓰며 자문(自問)합니다. 책으로 세상을 품고, 글로 나를 표현했던 시간은 성장통이자, 뜨거운 열정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여름날의 #해시태그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세상의 넓이를 알았고, 글을 쓰며 제 안의 깊이를 헤아렸습니다.
#가을이었다.
삶의 깊이를 알아가는 요즘. 어머님의 아흔둘 인생이 가을에 늦가을로 접어듭니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듯, 어머님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삶의 유한함을 고요히 깨닫게 합니다. 가을의 독서는 즐거움을 넘어, 삶의 의미와 죽음을 사유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가을밤, 따스한 조명 아래 삶의 순리를 받아들이고, 어머님과의 소중한 기억을 한 장 한 장 되새깁니다. 어머니 등에 업혀 듣던 자장가, 따스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순간들, 함께 나눈 소박한 웃음과 눈물……. 모든 기억이 책 속의 한 구절처럼 떠올라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쓰는 동안, 슬픔은 치유가 되고 사랑은 선명해집니다. 글쓰기는 상실의 아픔을 보듬고, 삶을 긍정하는 힘을 줍니다. 어머님과의 시간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가을 달빛 아래 펜을 듭니다. 가을은 삶의 풍요로움을 맛보게 하면서도, 동시에 비움과 내려놓음을 가르쳐주는 계절입니다. 곡식이 익어가듯 삶의 지혜가 무르익는 이 계절 속에서, 책과 글을 통해 깊이 있는 나 자신을 만납니다. 책으로 슬픔을 이해하고, 글쓰기로 사랑을 붙잡는 #가을이었다는 해시태그를 새깁니다.
#겨울이었다.
머지않아 차가운 바람과 함께 찾아올 겨울. 하지만 그 겨울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의 계절임을 압니다. 꽁꽁 언 땅속에서 다시 피어날 생명을 기다리듯,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배우고, 기록하며,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더욱 깊어질 사색은 또 다른 글감과 깨달음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다음 봄에 피어날 새로운 동화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계절의 순환처럼,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을 포용하고 완성하는 위대한 여정입니다. 어떠한 겨울이 오더라도, 독서와 글쓰기로 제 삶에 새로운 #겨울이었다 는 해시태그를 남길 것입니다. 독서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글쓰기로 따스한 온기를 전하며, 저는 또 다른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이 가을, 잠시 멈춰 서서 여러분의 삶에 #해시태그를 달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을 글로 남겨보세요. 독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쓰기는 우리 자신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기회를 줍니다. 책과 함께 가을을 깊이 음미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즐겨보세요. 그 속에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가을이었다가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책 속에서 길을 읽고, 글 속에서 자신을 남겨보세요. 우리의 삶은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라는 두 개의 아름다운 기둥 위에서 더욱 단단하게 지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