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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an 09. 2024

용용 살겠지

용용 살겠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그 존재의 영향력은 생각 외로 강하다. 아들이 어렸을 때 이렇게 물었다. “아빠, 진짜로 용이 있어?”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용은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우리 삶에 함께 살아왔다. 물을 다스리며 하늘을 관장하는 용은 제법 우리 삶과 밀접하다. 민간신앙은 물론이요, 풍수나 설화, 종교, 정치에서도 용은 빠질 수 없는 최고의 위치를 누리고 있다.


  “드래곤 길들이기에 나오는 용이랑 우리나라 용은 왜 모습이 달라?”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들은 또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랑 외국 사람도 생긴 게 좀 다르지 않나?” 순수한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마 서양에서는 공룡에서 용의 모습을 형상화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강하면서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드래곤 길들이기’에 나온 주인공 ‘투슬리스(toothless;이가 없는)’가 선한 용으로 인간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 인기를 끌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네 용은 서양과는 조금 다르다. 세상에서 제법 힘 좀 쓴다는 여러 동물의 형상이 뿔에서부터 얼굴을 거쳐 몸통과 발톱까지 담겨져 있다. 각 동물이 가진 저마다의 최고 무기로 무장한 용은 그 조화능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믿어진다. 그만큼 강인하면서도 우리 삶과 밀접한 동물을 엮어 용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난관이 생기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용의 기운이 현세에 뻗어 나와 삶에 희망을 주는 우리 선조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다.


  2024년은 갑진년 청룡의 해이다.(십간에 둘씩 짝을 지어 청, 적, 황, 백, 흑의 순으로 색이 정해진다) 해마다 십이지(十二支)의 주인공이 변하면 저마다의 띠가 돌아왔다며 소원을 품는다. 올해는 청룡의 기운이 가득하여 용띠는 더 큰 품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갑진년의 값진 해가 떠올랐으니 우리도 더 값진 삶을 살아가야겠다. 2023년은 코로나19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은 해였다. 경제는 조금 나아질 것이고, 우리 삶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냉정하다. 세계적으로는 기후 위기를 넘은 기후재난, 새해 첫날부터 이어지는 멈추지 않는 전쟁과 분쟁, 불안정한 세계 경제는 물론이요, 신냉전이 다시 시작된다는 국제 정세와 국가 간의 폭력적인 힘의 논리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는 국민을 위협하는 너무도 다양한 반사회범죄와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 전세 사기, 국민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며 서로를 헐뜯는 혼탁하고 혼란한 정치,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어려워지는 경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교육 현장과 진로진학의 쏠림, 힘을 잃어가는 시민주도의 문화예술생태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난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낸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나, 너, 우리의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의 바람이 우리의 힘이다. 세상은 여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넘치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을 나누며 살아간다. “용용 죽겠지.”라는 말보다 “용용 살겠지.”라는 인사말을 전해보자. 갑진년을 더욱 값진 년으로 가꾸면서 살아가자. 어제는 오늘의 바탕이고, 오늘은 내일의 시작이다. 지금, 여기 행복한 우리가 되도록 한껏 웃어보자. “용용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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