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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by Jul 25. 2019

프라하에 비가 온다

10th of '33 journal <여행의 두 얼굴>



비가 온다. 한쪽 손에 우산을 쥐고 걷는다. 여행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어딜 봐도 기대한 풍경에 못 미치는 데다, 돌아다니기도 불편하다. 이러니 여행자는 해만 기다린다. 그러나, 프라하의 전부가 궁금했던 지난봄은 달랐다. 지금까지의 여행을 통틀어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비가 간절했다. 캐리어 속 고이 잠든 우산을 바라만 보던 나날이었다.







프라하와의 극적인 재회도 날을 거듭하며 안정을 찾았다. 도파민을 수시로 분출하는 시기는 지나고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의 합이 환상적인 일명, 황금기가 오고 있었다. 눈에 익은 골목과 하늘, 건물, 나무의 색채, 낯선 풍경 속에 익숙함이 자리를 잡았다. 경계가 사라지고 현실감조차 달콤해지는 시간. 더 가까이 다가가고 더 알고 싶다.


북적이는 구시가를 조금 벗어나야 비로소 이 도시의 속살을 볼 수 있다. 공원 벤치엔 껴안은 건지 붙어 앉은 건지 구분되지 않는 남녀가 쉴 새 없이 눈과 입을 맞춘다. 그들의 머리 위로 라일락이 흐드러지고 있다. 거기 내리쬐는 햇살이 더해지면 진한 향기, 낯뜨거움(혹은 부러움), 눈부심... 그중 무엇 때문이라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공원, 시장, 강가, 버스정류장 그 느리고 안온한 일상들을 멍하니 보노라면, 결국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왜 일상이란 속해 있을 때 그토록 권태로울까. 결국 모든 것은 내게 달린 것이었나 하고 답지 않게 반성 어린 마음을 가지곤 했다. 숲을 보기 위해선 이렇게 잠시 자리를 떠나보는 수밖에 없는 걸까.


프라하에 조금씩 젖어드는 나완 달리, 그 봄은 좀처럼 비를 뿌리지 않았다. 화창한 날과 흐린 구름이 바삐 오가고, 때아닌 한파에 패딩 점퍼를 꺼내 입었지만 우산 쓸 일은 드물었다. 이쯤이면 올 때가 됐는데, 다락을 서성이며 좋아하는 장대비를 기다렸다.


어느 한 곳에 주어진 시한부 인생처럼 여행길에 오르면 늘 최고의 순간을 기대한다. 우리가 평소에도 이런 밀도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산다면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여유조차 없겠지. 그러나, 안다. 삶이 매 순간 반짝일 수만은 없음을. 아마 얼마 못가 눈이 멀어 버릴지도 모른다. 태반의 지루함과 간간이 비추는 빛의 조화가 진정한 삶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필요하다.


삶의 두 가지 얼굴은 곳곳에 있다. 당신을 좋아하게 된 건 분명 특별한 느낌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반하게 한 것은 별 것 아닌 일에 터지곤 하던 실소에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스쳐간 수많은 감동보다 그저 네가 그렇게 웃을 때,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꿈이라 불러왔고, 여전히 꿈일지 모를 나의 글도 마찬가지. 전업이 되는 동시에 글자수로 밥을 헤아리게 했으며, 다른 삶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갉아 먹히는 영혼을 구하는 늙은 영웅이자, 외로운 친구, 영영 곁에 남을 존재다.


행복하고만 싶은 여행의 순간. 그러나, 두고 온 것이 있어서, 그리운 것이 있어서 떠나온 곳에서는 외로웠고 또, 돌아가고싶었다. 아마도 돌아간 곳에서는 다시 권태에 빠져 그 순간을 후회하게 되겠지만.

농밀한 생각에 맑아도 검붉은 장미에 둘러싸인 듯 어지러운 프라하의 날들. 또, 금방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빽빽하게 들어찰 땐, 정작 몸이 시려 돌아다니지 못했다. 모든 일이 마음처럼 되길 바란 것은 욕심이었다. 꼭 쥐려 할수록 모래는 흩어진다. 그것이야 말로 여행과 일상이 지닌 두 얼굴의 접점이었다.


프라하의 이면을 만난 순간. 어쩔 수 없는 권태와 회의가 고개를 드는 시간.

구름 뒤섞인 프라하의 하늘에 마침내 비가 온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날, 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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