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th of '33 journal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도록>
가끔 어딜 다녀와서 기억에 남지 않는 때가 있다. 어떻게 거길 갔는지, 가서 뭘 봤는지, 딱히 모르겠는 것이다. 그건 싫은 것보다 더 좋지 않다. 영화를 보긴 봤는데 재미는 둘째치고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는 건 보는 동안 딴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몇 년 전 처음 프라하를 다녀온 때를 떠올리면 이처럼 반성 어린 생각이 든다. 2개월이 넘는 여정 중 프라하에 할애한 시간은 단 이틀. 별다른 기대나 목적 없이 그저 유명한 도시이니 한 번은 가봐야지 싶었다. 결국 그때 프라하의 인상은 명성에 비해 훨씬 희미했다. 더군다나 당시 나는 먼 땅, 아득한 감정에 휘말려 있었음을, 시인한다.
그래서 나는 S가 이번 여행을 제안했을 때, 잠시간 시큰둥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시 떠났고, 비로소 프라하를 제대로 만났다.
그렇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 되어버린 이름. 프라하에서 터득한 여행을 간직하는 방법.
여행지와 여행자,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도록
물어본다. 누군가 당신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어디선가 나를 생각하는 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내겐 말하자면 뭉클함이다. 분초를 다투며 변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누군가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하나, 떠나기 전의 마음을 묻는다. 사실 여행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힘이 세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스프링클러처럼 촉촉하게 메마름을 적신다. 평소 그토록 이성적인 당신을 여행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할 것이다. 외면하려 들어도 어쩌지 못할 마음처럼, 밀려드는 파도처럼. 그러니 못해도 각오 정도는 챙겨가길 당부한다. 여행이 어떤 마법을 부려도 놀라지 않을 마음의 준비. 더욱이 황금 같은 여행의 소중함을 아는 우리에겐 좋은 시너지가 필요하다. 여행자와 여행지가 마주 볼 때 그 시간을 더 오래도록 간직하게 된다. 프라하를 통해 배운 교훈이다.
나의 풍경을 그곳에
눈으로 사진 찍는다는 표현이 있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그 많은 절경들을 마주할 때, 몇 번은 날아갈 듯 기뻤지만 동시에 잠깐씩 울적해지곤 했다. 지속성에 대한 갈망, 망각에의 두려움 때문에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 풍경이 사진 속에 다 담기지 못할 것을 알아서 더욱더 셔터를 눌렀다.
프라하의 풍경은 다소곳하고 따뜻했다. 단지 붉은 지붕 때문이 아니라, 그곳의 공기와 그것이 지닌 향기, 공원에 떠다니는 비눗방울까지 온화함 속에서 태어난 듯싶었다. 푸른 밤이 내리는 순간에도 붉게 물든 석양의 기운을 감추지 못하는 도시. 언젠가 끝이 올 때 이 세계에 남을 최후의 불빛 같았다.
눈으로 찍은 사진들은 카메라를 통해 담은 것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왠지 모르게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한낮이 저무는 것보다 더 짧고 매끄럽게 느껴지듯. 아득하고 어둡지만 오히려 가깝고 명료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것들은 애써 기억하려 들지 않는 이상, 뇌리에 오래 남지도, 어딘가에 남겨둘 일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마음의 저항은 여행의 힘 앞에 가끔 버텨내곤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삶이란 모든 순간을 품고 있고, 예외는 늘 도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반드시 뭔가를 남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고 또, 그거면 충분한 때가 있다. 그때는 풍경, 사람, 시간, 다른 무엇도 아닌 괜찮은 내가 남는다. 그리고 하나의 여행을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던 첫 프라하에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오롯이 나다운 내가 있듯.
두 번째 프라하에선 인상 깊은 장면이 더 많았다. 여행을 간직할 여유와 새로이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얻어간다. 아마 프라하와 내가 서로를 기억하는 한, 이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비록 헤어졌어도 문득 추억하고 웃게 되는 것처럼. 모든 여행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끝은 지속된다. 영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