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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11. 2020

이직을 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이제야 수요일> Chapter 4.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자세

가장 처음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던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돈이었다. 


조금 더 나은 조건의 금액을 받으며 조금 더 큰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나를 움직였다. 큰 일의 정의라는게 과연 어떻게 내려지는지를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런 일만 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야.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조금 더 멋진 일을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니는 회사생활은 늘 지옥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들, 매일 매일 똑같이 이어지는 지리한 업무들, 그리고 누가 봐도 너무 짜치게 보이는 일감들.... 한 개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과연 내가 얼마나 순이익을 남기게 될 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적은 금액의 업무들. 회사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회사에서의 인맥은 회사 밖으로 나가면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들은 함께할때는 웃으면서 항상 일상을 공유하는 좋은 동료가 되어주었지만, 그 회사를 퇴사하고 나면 더 이상 연락할 필요가 없는 그저 '동료'들일 뿐이었다. 회사에서 마음을 나누는 것도, 자아를 실현하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짧은 회사생활 속에서 가장 먼저 배웠다. 그렇다면 남는 건 돈 뿐이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떠나자. 

출처: pinterest


우습게도 - 이 생각을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수많은 면접과 서류전형과 인적성 사이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왜 우리 회사인가?를 물었다. 왜 우리 업종으로 오려고 하는가? 왜 우리 회사로 오려고 하니? 앞으로 어떤 목표가 있어서 이 업계로 오고 싶은 거니? 웃기게도, 그런 꿈 따위가 사라진 다음에 본 면접들이었다. 면접에서 나는 웃으며 적당히 거창한 미래를 꾸며내 말했지만, 아마도 그것은 몇십 년의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들 앞에서는 의미없는 꾸밈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 얄팍한 가면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내서, 결국 이 친구는 돈을 벌고 싶은 거로구만, 하는 나의 내밀한 속마음을 순식간에 읽어냈을 것이다. 수없이 이어진 면접들 앞에서 때론 화가 나고 때론 기분이 나쁘고, 때로는 또 부끄러웠다. 가끔 어떤 면접관은 면접자리에서 내 속마음을 지적해 내기도 했다. 그러면 그게 또 화가 나면서도 부끄러워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기분 나쁜 마음을 곱씹기도 했다. 아니 왜 돈이 어때서. 회사는 다 돈 벌려고 다니는 거 아닌가? 내가 꼭 자아실현에 기반한 커리어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만 뽑을 만한 인재로 대접받는 건가? 그런 반항심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더랬다. 


출처: Morning Glory (2010)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은,
때로 내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다. 


돈을 중시하는 태도가 경시되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고 들었다. 50년대생인 아버지는 잦은 이직을 하는 나를 보며, 본인들 시절에는 연봉도 주는 대로, 몸값도 그저 불리는 대로, 한번 들어간 회사는 뼈를 묻는 것, 이렇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런 시절을 지나온 임원들이 보기에는 내가 좋아보일 리 없다면서. 그들이 틀렸고 내가 맞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나도 안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 회사의 구성원과 얼마나 어울리는가, 그 회사에 얼만큼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앞으로 그 회사에서 어떤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 임원들이 보기에 내가 별로다 싶었던 논리적 감정적 이유가 있었다면, 그래 그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번의 면접을 보면서 점차 깨닫게 된 것은, 과연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이직을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이직의 사유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이곳에서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수없이 받았던 면접의 질문이기도 하고, 이력서를 제출할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왜 이직을 하려고 하시나요? 수없이 이 질문을 들으며 스스로에게도 물었다. 왜 이직을 하고 싶니? 이 회사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니? 다른 회사에 가면 다를까? 


출처: pinterest


너는 그럼 지금, 당장,
이직을 하지 않고서는 행복하지 않은거니?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주관적이다. 어떤 것이 행복의 조건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조건을 중시하는 사람인가? 애초 이직을 고민하기 전에 미리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야 하는 이 질문을, 나는 조금 늦게 서류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나는 돈도 중요하지만, 아침 출퇴근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리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대학 시절 배차간격 극악의 5호선을 타고 매일 학교로 등하교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노선은 5호선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 좋은 광고주나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게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는 걸 나도 이제는 안다. 상사가 좋은 걸 바라기 힘들다면, 함께 붙어 일하는 실무진은 나와 성격이 맞는 좋은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붙어서 대화해야 하는 사람들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또 지옥이다. 회사의 복지를 따지는 것은, 광고회사라는 특수 구조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대신 출퇴근이 여유롭거나, 회사의 분위기가 여유롭고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경직된 구조의 회사를 다닌다면 기존에 있던 곳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힘들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얼만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느냐도 중요하다. 다양한 기회를 겪으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 주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그 모든 것들을 충족하기 어렵다면 70퍼센트만이라도 충족하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출처: pinterest


결국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직장인이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내는 곳, 회사. 그런데 그곳은 사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장소는 아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조건을 100프로 채워주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탐나는 인재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혹은 내가 그렇게 탐나는 인재라 할지라도, 100프로를 줄 필요 없이 80프로만 줘도 만족하는 경쟁자가 어디선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결국 100프로를 얻을 수 없고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은 무엇이고,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나는 그래서 지금 당장 이직을 하는 대신,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중 돈이 가장 최우선 순위에 오른다면, 그걸 따라가면 될 일이다. 세상에 잘못된 기준은 없다. 다만 모두의 기준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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