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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2. 2020

대한민국에서 기자로 살아남는 법

<이제야 수요일> Chapter 5. 기자 K와 S를 인터뷰하다 (1) 

직업인으로서 지인들을 알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지를 잡아, 짤막한 에세이를 부탁했다.
직접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담으면 더 재미있겠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즈음의 사정상 카카오톡 대화로 대체했다. 그들은 직업인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그 직업을 대표할 수는 없다. 각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와 감상을 담고 싶어 욕심을 조금 냈고, 만에 하나 돌을 던질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몫이다. 에세이의 주인공은, 읽는 이의 감상을 위해 공개하지 않을 예정. 


대단하지 않은 인터뷰_기자 K의 이야기


출처: pinterest


나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이건 뒤집으면 주변에 미디어와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자, PD, 작가나 연예인 등으로 일하는 학과 동문들이 꽤 많다. 그중 기자로 일하고 있는 K와 S는 꽤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지인들이다.  


둘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약 6년 쯤 되었다. (익명성을 위해 둘의 경력을 평균내본 수치다.) K와 S는 각각 다른 언론사에 다니고 있지만, 우연히도 둘의 가치관 중 비슷한 부분이 많아 가끔 셋이 만나 술을 마시곤 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둘은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K는 대체로 비슷하다고 대답했고, S는 어디가 비슷하냐고 반문했으니 둘은 이 질문에서마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6년이나 일을 했으니 기자란 무엇인지 꽤 그럴듯한 개똥철학 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 같아 물었다. 본인들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 그리고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이 콘텐츠는 먼저 K로부터 받은 답변을 실었다. S의 이야기는 이어지는 콘텐츠로 갈무리할 예정이다. 




현직 기자가 말하는 기자의 #워라밸 


기자는, 노동과 일상의 밸런스가 사실 잘 맞지 않는 직업이다. 


공무원 제외하고 세상 어느 직업의 워라밸이 잘 맞겠느냐만 싶지만, 기자직의 ‘예측불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편.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상대적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굉장히 잘 지켜지는 편(주52시간제 적용 이전과 이후 차이가 없음. 원래 지켰기 때문에)이지만, 취재직의 경우 출입처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예컨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는 야간 취재를 다니다가 내 발목에 금이 가기도 하고, 예산안 통과를 두고 늦은 시간까지 봐야 하고, 선거날에는 밤을 새고, 오늘도 본회의 갑자기 저녁 시간으로 잡히면서 미뤄지는 등…. 뉴스는 기자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기자가 뉴스의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이 직업을 택하는 순간 어느 정도 감내하는 측면이 있다. 일종의 각오가 되어 있달까. 그리고 보상만 확실히 주어진다면, 최악은 아닌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어쨌든 꼬박꼬박 카운트해서 대체휴가로 환산해주니까. 다만, 그날 잡은 술자리를 갑자기 파토내는 일이 잦다. 미리 약속해둔 자리를 가는 것보다 당일 급약속의 성사 가능성이 더 높은 정도이니. ‘저녁이 있는 삶’을 간헐적으로만 누릴 수 있는 시즌이 정해져있다는 점에서 10점 만점 중 4점 정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출처: Pinterest



기자, 그리고 #자아실현


기자직의 알파요, 오메가.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에서 가오를 담당하는 그 부분. 


사실 이 부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일반 기자직을 할 이유가 뭔가 싶다. 물론 일부 매체의 경우 자아실현을 포기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게 가능하다. 극소수의 매체는 자아실현과 풍족한 삶을 일치시킬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매체에 소속된 기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 둘 중 어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편이고, 그 타협의 선은 자신의 성향과 소속 언론사의 편집 방침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자는 직군 자체의 ‘특수성’이 있는 직업이고, 어느 정도 공공성을 갖춘 직무이기 때문에 대체로 기자직 종사자들은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에 관련이 있는 편이다. 일종의 사명감, 직업윤리의식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자는 하기 어려운 직업이고, 메리트도 없다. 소위 ‘기자정신’이라고 불리는 직업윤리를 갖추지 못한, 그저 돈 받은만큼 일하는 ‘월급쟁이’들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게 현 대한민국 언론의 문제점이다. 자본에 잠식되는만큼 공공성은 담지하기 어려워지고, 기자들은 조회수와 페이지뷰만 쫓게 되며, 그 결과가 언론자유지수 아시아 1위, 언론신뢰도 OECD 꼴찌 수준의 현 주소인 셈이다. 이러한 기자 불신이 강화될수록 언론의 역할과 효능감도 하락하고, 제4부로서 권력을 감시한다는 균형추도 붕괴된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게끔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 사라지고 수많은 애완견만 남은 세태는 불행하게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만큼 남은 기자들의 외로움과 무력감도 커져간다.



얼마 전 KBS <저널리즘 토크쇼 J>가, 한겨레에서 삼성을 비판했던 기자가 퇴사 후 삼성에 입사해 이재용의 가방을 들어주는 장면을 ‘슬프다’라고 평했다. 맞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분노해야 할 일이다. 기자 개인이 아니라, 그 기자가 소속됐던 한겨레라는 매체 하나가 아니라,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세태, 이를 악용해 각 매체를 자신들의 홍보용 찌라시로 포섭해나가는 삼성, 이를 방관하는 시스템 등에 분노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여전히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열성적으로 쓰고 있다. <경향신문>은 파리바게트 및 그 이전 몇 번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경영진과 충돌해가면서 지면 사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광고 매출 감소를 감수하고 ‘헌법 위의 이마트’ 시리즈를 썼고, 광고와 기사를 ‘트레이드’ 하자는 몇 번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 언론사에 소속되어 있기에 기꺼이 이 월급을 받고, 부업을 뛰면서라도 가급적 이 곳에서 더 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려고 하는 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는 양화의 절멸을 막기 위해 꾸준히 양화를 찍어내고 있다. 이런 세태 속에 필요한 건 모든 매체, 모든 기자를 ‘기레기’ ‘기더기’로 몰아서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응원이 필요한 곳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이다. 


특정 언론사나 특정 기자를 깔지언정,
기자 전체를 폄훼하는 건
힘든 환경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동료에 대한 모독이니까.


이 자리에서 나는 많은 효능감을 느낀다. 통합당이 거지 같은 언행으로 나를 빡치게 해서 조지는 기사를 쓸 때, 민식이법 등을 위해 어머니들이 국회에 와서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기록하고, 비판하고, 지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글자들이 사회를 1mm만큼 진보하게 하거나 혹은 1mm만큼 덜 퇴보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고, 실제로 그러고 있으니까. 기자 개인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고, 각자가 싸우고 쓸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이 조직과, 창간 20주년 동안 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온 선배들을 알기 때문에 나는 이 곳을 쉽사리 놓지 못하고 있다. 까도 내가 까지, 남들이 까는 꼴은 못 본다. 어디 같잖은 글을 쓰는 종자들이 우리 회사에 대해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릴 때 참지 못한다. 올해 초 JYP를 잠깐 만났는데, JYP 가라사대 “그래도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기사를 쓰는 것밖에 없다”라더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직업은, 이 직업을 하기 위해 태어난,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이다. 


어깨에 힘 들어가 있는 허세, 같잖은 사명감, 콧대 높은 자존감, 어설픈 정의감,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공명심 등으로 뭉쳐진 자아의 소유자들은 이 직업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매일 자조하다가도 번뜩번뜩 되돌아보며 초년병 시절의 그 허세감을 되새기고는 한다. 수습 시절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했던 세월호 유가족에게 느꼈던 마음, 내가 이 직업을 처음 갖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 때 목소리를 들어줬던 기자들에게 내가 감사했던 마음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잊을 수 없는 그 순간들을 오글거리는 어휘들로 장식해 간직하는 거다. 내 자식에게 추천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가 어떤 성정을 갖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10점 만점에 8~9점 정도.



출처: Rafal Reyzer / Pinterest



#출세와 명예


출세는 무엇이고, 명예는 무엇인가. 오전에 KBS 회의를 하고 오후에 청와대로 출근하는 대변인이 되면 출세하는 것인가? 혹은 입당 후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면 출세하는 것인가? 아니면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고액 연봉을 받는 사기업 간부가 되면 출세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금배지를 단다고 모두가 재산이 느는 것도 아니고, 대변인을 한다고 모두가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출세 혹은 명예로 여겨지는 것들을 손에 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본인에게도 출세이자 명예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기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서, 그리고 공직에 오른 후의 언행이 어떤지에 따라, 그 공직을 마칠 때의 언행은 또 어땠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민경욱이 될 수도 있고, 김의겸이 될 수도 있고, 고민정이 될 수도 있고, 신경민이, 박영선이, 김재철이, 김장겸이 될 수도 있다. 


폴리널리스트라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폴리널리스트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기자로서 뛰다가, 자신이 직접 어떤 뜻이 있어 정계에 발을 들일 수도 있다. 기자를 하다가 정치로 갈 경우, 그 사이의 텀은 어떻고, 어떤 과정을 거쳤고, 또 들어가서 어떤 정치를 펼치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기자를 하다가 바로 돈을 쫓아서 기업에 갈 수도 있다. 경력을 바탕으로 큰 돈을 벌 수도 있다. 그 개인에게 큰 출세일 수 있겠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것이 출세나 명예로 보이지 않는다. 

진리의 케바케 사바사.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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