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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16. 2020

주니어지만, 마케터입니다

<이제야 수요일> Chapter 6. 마케팅 직무에 대한 개인적 소회

직업인으로서 지인들을 알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지를 잡아, 짤막한 에세이를 부탁했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 나 스스로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편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직업인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 직업을 대표할 수는 없다. 각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와 감상을 담고 싶어 욕심을 조금 냈고, 만에 하나 돌을 던질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몫이다.



나는 4년 차 마케터다


2017년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업계에 들어온 지는 이제 만 4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첫 시작은 PR 에이전시였고, 현재는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에근무 중이다. PR 에이전시를 다닐 때부터 나는 항상 디지털에 대해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가 늘 좋았다.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그땐 그냥 다른 일보다 소셜미디어 관련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졸업논문 주제로 소셜미디어를 잡을 정도였으니 그 관심은 꽤나 오래된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디지털 광고회사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업무는 신규 매체를 발굴하는 일이다. 온라인상의 모든 웹사이트와 모든 앱은 잠재적인 광고 지면이 될 수 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지면이란, 한 번이라도 더 소비자에게 우리의 브랜드, 우리의 제품을 노출하고 판매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TV CF 한 편 태우자고 엄청난 돈을 소비하던 예전의 광고와는 달리, 이제 디지털 시대에서 광고인들은 24시간 동안 어떻게 그 예산을 잘 쪼개서 효율적으로 사람들의 소비를 이끌어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대에 다다랐다.



최근 가장 핫한 화두는 라이브 커머스.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업무이자, 업계에서 가장 핫한 업무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라이브 커머스가 이 정도로 각광을 받게 된 건 8할이 코로나 19 덕분이라는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하기도 하지만 이건 다른 기회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직은 시니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주니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애매한 연차에 들어섰지만 그래도 선배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꽤 그럴듯한 개똥철학 한두 개쯤은 갖게 되었다. 최근 업계에서 가장 핫한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고 있는지,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 콘텐츠는 직업인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담았다. 광고, PR, 마케팅 업계를 모두 포괄해서 말하고 싶은 나머지 해당 용어들을 모두 혼용해 사용하지만, 실제로 각각의 업계직무 그 특성이 매우 다를 수 있음을 사전에 밝혀둔다. 다음 콘텐츠부터는 다시 지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가져와 볼 예정.




사람들이 생각하는 광고회사의 삶



현직 마케터가 말하는 #워라밸


광고/PR 에이전시를 다닌다는 것은 광고주의 업무를 대행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에이전시 소속이라면 광고주보다 전문적인 인사이트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브랜드에서 요청하는 업무 내용에 따라, 브랜드에서 하는 것보다는 외부 인력에게 외주를 주었을 때 효율적일 업무들을 대신 진행해 주는 일들을 하고 있다. 때문에 언제 어느 시점에서 광고주의 요청사항이 들어올지 예측할 수가 없다. 연간 기획을 기반으로 구성된 전체적인 흐름은 공유받지만, 코로나 19 이슈가 터진 올해처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갑자기 생겨나는 일도 다반사다. 우리 회사와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는 고주 A도 올 초만 해도 기존과 유사한 패턴의, 그러나 약간 넓은 스펙트럼의 매체를 시도해 볼 정도만 예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터지며 이 모든 계획은 백지로 돌아가버렸다. 현재는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이른바 최첨단 메소드인 라이브 커머스에 매달 엄청난 리소스를 투자 중이다. 올 2월까지만 해도 라이브 커머스가 이렇게 우리의 일상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예측할 수 없는 업무는 때로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예측 가능한 일정과 정리되어 있는 메일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에이전시를 다닐 수 없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크고 작은 이슈가 터지고, 그 와중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번갈아 광고주에게 전달하면서도 이슈를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완벽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 AE의 역할이니까. 뭐,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케터에게 야근은 숙명이다.


디지털 대행사만 그렇다고 말할 순 없고, 거의 모든 광고/PR 에이전시는 공통적으로 야근이 많다. 주변 지인들만 해도, 새벽시간 퇴근이 일상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마케터들, 그리고 광고인들이 유독 많은 야근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업무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사소할지도 모르는 한 부분에 대한 시간 투자가 전체 퀄리티를 좌우하는 일이 많아, 어느 한 부분도 허투루 넘기기가 쉽지 않다.


광고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드라인을 맞추는 일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야근 때문에 회사 다니기가 힘들었던 적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인력을 동원해 초과근무를 시키는 것이고, 인력 베이스로 돌아가는 대부분의 에이전시는 포괄임금제 하에서 직원들을 활용해 최대한의 효율을 창출해내려고 노력한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른지라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브랜드가 아닌 에이전시에 있는 마케터의 경우 워라밸이 그렇게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개중 OT나 휴일근무비를 지급하는 회사는 아주 좋은 회사로 평가받는다. 나는 여전히 모든 회사들이 그런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10점 만점에 4점.




마케터, 그리고 #자아실현


나는 학부, 대학원 모두 소위 말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미디어에 대한 열정은 거의 십 대 시절부터 갖고 있었지만, 대학을 입학할 때부터 광고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광고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대학원에 가고 난 다음부터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신문방송학과에는 PD를 꿈꾸는 친구들만큼이나 광고인을 꿈꾸는 친구들도 많아서, 광고쟁이가 되겠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들을 보며 신기해했던 적도 있다.


이제와 솔직하게 말해본다.
돈을 벌고 싶다면, 이 업을 선택해선 안 됐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광고라는 업계는, 그중에서도 AE라는 직무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무는 아니다. 오히려 워라밸을 생각하면, 최저시급보다도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개중에 일부는 성공한 광고인이 되어 높은 몸값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광고/PR/마케팅 직무의 사람들은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저평가된 월급을 받으며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의 이 모든 AE들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밤을 새 가며 일할 수 있는 건 어딘가 설명하기 힘든 괴상한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워라밸이라고 한탄하면서도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을 버티게 하는 힘. 가끔 안하무인의 클라이언트를 만나 X욕을 먹으면서도 그들의 요구를 스무스하게 맞춰줄 수 있는 사회성을 갖게 하는 힘. 아무도 모르는 사소한 것들에 - 그러나 그 사소함이 모여 전체적인 퀄리티를 결정할 수 있는 것들에 - 밤을 새워가며 열띤 토론을 하고 수정에 수정을 또 거듭하게 하는 힘. 이 모든 것은 결국 광고인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어떤 책임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케터로서 책임감이 없다면, 본인이 맡은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오래 버티기 힘든 직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실현에 기여하는 정도를 평가하라고 한다면 10점 만점에 7점 정도를 주고 싶다.



#출세와 명예


광고회사 직원의 삶,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TV에 나오는 화려한 CF들을 제작하고, 연예인을 만나고, 밤을 새워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를 만들고.... 입사 전 내가 생각했던 광고회사란 이런 이미지였다. 그런데 웬걸. 입사 이후 맞닥뜨린 삶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어떤 부서는 내가 상상했던 TV CF를 만들지만, 그 외에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광고 지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입사 이후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온라인과 모바일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지금, 그야말로 우리가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광고 지면이 될 수 있다. 디지털을 베이스로 한 우리 같은 광고회사는 그 다양한 지면들을 활용해 광고를 집행할 때 어떻게 하면 광고주의 매출로 귀결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상상했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뭐든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브랜딩, PR, 광고, 마케팅 등 세분화된 카테고리는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0부터 100까지를 모두 경험하고 때로는 0에서 100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니까. 아울러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 미친 듯이 변화하는 사회의 트렌드를 가장 발 빠르게 읽어내고 그 트렌드에 맞춰 내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를 어필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비록 회사의 규모는 각자 다를 수 있어도, 그리고 때로는 회사라는 틀을 벗어나 1인 기업가로서 재출발을 할지라도 이 업을 해본 사람들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이라 믿는다.



뒤집어 말하자면,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간파하는 능력, 그것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센스, 남들과 유려하게 의사소통할 능력이 없다면 그 어떤 업계보다 빠르게 도태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런 도태된 인력이 되어 소위 말하는 '고인 물'로 남게 되는 경우도 대다수. 개인적으로는 그런 '고인 물' 또는 '꼰대'가 되어, '요즘 애들은 그런 걸 왜 좋아해? 참 이상한 세상이야'라는 말을 쉽게 주워섬기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게 내 마음대로 쉽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 어디나 그렇듯, 이 업계도 참으로 복불복이라는 의미에서 10점 만점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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