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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5. 2020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제야 수요일> Chapter 7. 스타트업에 뛰어든 K와의 대화

직업인으로서 지인들을 알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지를 잡아, 짤막한 에세이를 부탁했다.
직접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 담으면 더 재미있겠지만,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즈음의 사정상 카카오톡 대화로 대체했다. 그들은 직업인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그 직업을 대표할 수는 없다. 각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와 감상을 담고 싶어 욕심을 조금 냈고, 만에 하나 돌을 던질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몫이다. 에세이의 주인공은, 읽는 이의 감상을 위해 공개하지 않을 예정.


스타트업에 뛰어들 결심



주변 사람들 중 유독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소식이 전혀 없어서 그런 사람도 있지만, 워낙 다양한 활동을 척척 잘 해내고 있어서 '와 요새는 어떤 걸 하고 있으려나?' 하는 기대가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번 콘텐츠의 주인공인 K가 나한테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끔 들려오는 소식에 어떻게 잘 살고 있나 싶어서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올곧은 기준으로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친구.


이번에도 오랜만에 그와 연락이 닿았다. 잘 다니던, 누구나 부러워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하고 있단다. 어떻게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의 일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슬그머니 궁금해져 이번 콘텐츠를 부탁했다. 그의 말을 날것 그대로 옮기고 싶어서 콘텐츠에는 되도록 손대지 않았다. 덕분에 내가 알고 있는 K의 모습이 글 안에 물씬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자아실현, 그리고 퇴사


마케터로 입사했다. 미디어 스타트업, 대학원, 플랫폼 회사를 거치며 콘텐츠와 미디어로 경력을 쌓고 싶었다. 성장하는 산업 분야에 숟가락이라도 얹고 싶었다. 그 입구가 마케터일 줄은 사실 몰랐다.


장차 브랜드 내지 미디어 기획자로 포지셔닝하고 싶었는데,
내가 입사한 팀의 마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마케터의 세계는 복잡다단하다. 교보문고에 마케팅으로 검색하면 수많은 책이 나오는데, 저자들의 배경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는 인하우스 마케팅팀, 누군가는 마케팅 에이전시, 누군가는 디자인 에이전시, 누군가는 소비재 기업 그리고 나는 방송국에 있었다.



방송국의 마케팅은 소위 ‘콘텐츠 마케팅’이라 불린다. 그런데 이 콘텐츠 마케팅엔 2가지 뜻이 있다. 콘텐츠’로’ 마케팅하는 경우와 콘텐츠’를’ 마케팅하는 경우다. 방송국은 대개 후자에 집중한다. 드라마 ‘도깨비’로 예시를 들자. ‘도깨비’ 본방송 이외 포스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외부 프로모션 등은 대개 해당 프로그램 마케팅팀을 거친다.


옛날엔 이 분야가 상당히 빛났다. TV 방송국이 빛날수록, 마케팅팀도 빛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플랫폼을 갖지 못한 방송국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시장이 합쳐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며 마케터는 제품의 끝이 아닌 시작, 즉 제품 기획부터 참여해야만 하고 그런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마케팅 영역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직격으로 맞았다. 투입하는 자본과 나오는 결과물을 모두 측정 가능하다는 장점은 편의인 줄 알았으나, 인공지능을 통한 효율화라는 거대한 부메랑이었다. 최소 인력으로 최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시장이 됐다.


하지만 많은 산업에서 마케터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상품 기획부터 참여하는 마케터는 소수이며, 이미 놓여 있는 제품을 알려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영역은 인하우스 마케터보다 에이전시 (대행사) 마케터가 더 잘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 대기업 중 적지 않은 수가 인하우스 마케터에게 대행사 매니징 권한을 부여한다. 결국, 그 마케터의 역량은 얼마나 대행사를 잘 쪼느냐에 달려있다.



방송국은 대행사를 쓰지 않는다. 그냥 관행이다. 더불어, 콘텐츠 마케팅은 결과 자체가 측정이 불가하다. 모든 영역이 그렇지만, 콘텐츠는 마케팅으로 사기 치면 1분 만에 티가 난다. 막대한 마케팅 예산을 쏟아붓고 이젠 이름조차 헷갈리는 아스달 연대기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콘텐츠, 마케팅, 마케터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얻지 못한 무언가를 쟁취하고 싶었다.

그냥,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었다. 그 돈으로 미디어를 만들고, 그 미디어가 다시 돈을 가져오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리는 조직도 싫었고, 그 조직을 탓하는 나도 싫었다.


결국 STAY OR LEAVE다. 난 후자를 택했다.



#출세와명예 그리고 #워라밸


살다 보면 운명 같은 순간이 온다. 사실은 우연인데, 지나고 보니 운명이라고 포장하는 순간 말이다. 잡은 사람은 운명이라 말하고, 놓친 사람은 후회한다. 잡는 사람과 잡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감정은 결핍과 동경이다. 두 가지는 같은 선상에 있다. 내게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고자 혹은 갖고 싶은 무언가를 잡고자 행동하기 때문이다. 기회가 올 때 빠르게 손을 뻗는 사람은 결핍되었거나 무언가를 강력하게 바라는 사람이다.


출세와 명예는 가슴 안에 결핍과 동경이 있는 사람의 단어다.


하이 리턴을 갖기 위해선 하이 리스크를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약간은 광기에 절어 있어야만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데, 바로 동경과 결핍이 마취제로서 역할한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에단 헌트는 도박사로 묘사된다. 악당에게 핵미사일을 넘겨서 직접 발사대로 이동하게 만들고, 그 발사대에서 잡자는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펼친다. 영화니까 성공한다고 하지만, 현실도 비슷하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호랑이굴 입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도박이다.



창업이라는 도박을 하기 위해 난 많은 패를 갖다 바쳤다. 워라밸도 그중 하나다. 내 월급을 내가 벌어야 하는 사람은 대개 워크가 라이프고, 라이프가 워크다. 고정 수입이 없다는 환경 자체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아니, 발악하게 만든다.


이렇게 살다 보면, 문자 그대로 행복 회로와 절망 회로가 50:50으로 돌아간다. 사업이 망하고 인생이 뒤틀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부터 2,000억을 벌면 어떻게 쓸까라는 망상 그리고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고민까지. 이런 사람의 뇌는 광기라는 단어를 빼면 남는 게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퇴사를 감내할 수 있었냐고. 생각보다 쉬웠다. 내겐 결핍이 가득했고, 그만큼 무언가를 동경했다. 나의 30대를 바쳐서 기꺼이 큰 성공을 취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욕망이 만들어낸 광기가 잠재웠다. 글에서도 느껴지지 않는가. 나의 광기.


그래서 결심했다. 2천 억을 벌어서 흔들리지 않는 미디어를 만들겠다고. 30대를 바쳐서 부를 구축한다면, 그 부를 바쳐서 세상을 흔들 수 있는 미디어와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다. 사람은 어디에 시간을 쏟고, 무엇을 사고, 누구와 함께 있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난 사람들의 시간을 미디어로 사고, 그들에게 제품을 팔고, 새로운 사람과 연결해서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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