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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5. 2019

월급날이 밝았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이제야 수요일> Chapter 3.  돈이 없어


매달 21일. 월급이 입금되는 날이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 두 달까지였을까? 그 정도까지는 월급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열심히 일한 결과가 돈으로 환산되어 통장에 찍힌다는 프로세스 자체가 한동안은 굉장히 신기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직장인이라는 어엿한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뭐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쪼개서 아껴서 써야 하는 용돈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 번 돈이 생긴다는 것도 좋았다.


두 달이 지난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여전히 월급날은 중요하지만 얼마가 찍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졌다. 월급은 어차피 내 돈이 아니니까. '월급은 통장을 스쳐간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내 통장에는 돈이 항상 없는 것인지 나는 항상 '그것이 알고 싶'었다.
잔액은 찾지말아줘


내 통장에는 왜 항상 돈이 없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는데 대략 이유는 한 두 가지 정도로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쓰는 돈이 많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강남역 한복판에 있다. 다행히도(!) 회사 복지의 일부분으로 사내 식당이 존재하지만, 사람이 1년 365일 비슷비슷한 음식이 나오는 사내 식당에서만 밥을 먹게 되는 건 아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가끔 점심 때 비싼 밥을 먹기도 하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3,500원의 행복을 즐기러 카페에 들르기도 한다. 광고주의 무리한 요구에 화가 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집으로 가는 길에 그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가을 옷을 구매한다. 출퇴근길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다가 살 계획도 전혀 없었던 헤어팩이나 에센스 같은 제품을 사기도 한다. 이런 제품은 꼭 1+1을 사야 훨씬 싸진다. 그렇다면 2개를 사야지. 장바구니는 어느새 5만 원이 훌쩍 넘어가지만, 뭐 이런 소소한 지출쯤이야 돈 버는 사람인데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카드를 결제한다.


왜맴날 로그아웃해....


용돈 받던 시절 나의 지출 성향을 되짚어보면, 이 정도로 막 소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신용카드의 존재가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것이 틀림없다. 체크카드와 현금을 쓰던 시절에는, 그래도 잘 아껴 쓰면서 얼마 남지 않은 용돈을 부여잡고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열심히 고민했었다. 그런데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이 망했다! 망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모두 다 신용카드 탓이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처럼 신용카드를 탓해보지만 사실 이게 다 내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다. 쓰기 쉽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신용카드를 긁어댄 지난달의 나야 반성하자.



한번 늘어난 지출을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한 달에 100만 원을 쓰는 삶에 익숙해졌다면, 50만 원의 용돈을 받아 살아가던 지난날의 대학생 라이프로는 절대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그렇게 맛있었던 밥버거가 갑자기 맛이 없다. 학교 앞 가성비 맛집들에 행복했던 때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았다니. 가로수길과 강남역, 압구정 연남동은 이른바 신세계다. 바야흐로 신세계는 즐겨줘야 제맛. 친구들을 만나 5만 원을 우습게 써버리고 나면 그다음 코스는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으로 늘어난다. 참 신기하게도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돈 쓰는 건 세상에서 제일 즐겁다. 그렇게 또다시, 내 통장은 텅장이 된다.


내 월급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하지만 내가 돈이 없는 건 단순히 지출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적은 연봉을 받으니 아무리 돈을 아낀다고 해도 돈 모으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국내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은 3,600만 원 대라고 한다. 1억 원 이상의 고액 연봉자들부터 2,000만 원 미만까지 다 한꺼번에 앉혀놓고 평균을 낸 수치이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아가는 연봉의 액수란 생각만 해도 적은 수치일 것이다. 1년을 열심히 살아서 대략적으로 7~10% 정도 연봉이 오른다고 해도, 실제로 매달 내가 받는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른다. 애초에 버는 돈이 적으니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매달 받는 월급이 적으니
어쩔 수 없지 뭐.


실은 나도 안다. 이건 그냥 씀씀이 큰 사회초년생의 궤변일 뿐이라는 걸. 지름신과 시발 비용의 향연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카드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관념 부족한 사회초년생의 푸념이다. 소소한 소비들은 사실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래서 나는 늘 항상 돈이 없다. 돈 없는 사회 초년생으로 시작해 1억 모으기에 성공했다는 흔한 성공신화를 나도 한번 써보고 싶긴 하다만, 사실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읽다가 뜨끔하신 분이 있다면, 조용히 불러서 함께 푸념하고 싶은 심정. 어딘가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조용히 고개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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