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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Mar 23. 2018

44. 시에라 산과 뤼세피오르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본격적인 스칸디나비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에라 산 (Kjerag Mt.) 등정과 노르웨이 4대 피오르 중 하나인 뤼세피오르 (Lysefjord)로 떠나는 오늘의 여정은 성공적인 북유럽 여행의 첫 시험대인 셈이었다. 노르웨이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그다음 동서로, 다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질러 스웨덴까지 가려면 수많은 피오르와 험준한 산을 거치게 될 거라고 지도는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첫 피오르 탐험으로 뤼세피오르를 배로 가로지르고, 그 중간 곡 벽을 따라 이어진 시에라 산 까지 올라가 보겠다는 목표는 세웠지만, 지도를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 보고 연구를 해봐도 적당한 루트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리로 가야 하나, 저리로 갈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캠핑 장 주인인 현지인에게 정보를 청했지만, 낯선 이름들로 가득한 한 뭉치의 지도와 함께, 가는 길이 험준하니 조심하라는 걱정 어린 조언을 해 줄 뿐이었다.


답답했다. 막막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생의 여느 날과 닮아 있었다. 그래도 목적이 없는 인생, 혹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하루보다는 나은 셈이다. 우리에겐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거기에 길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으니까.

일단, 시에라 산 아래 선착장의 뤼세피오르 유람선을 예약했다. 이런 번거로운 작업은 물론 딸이 맡았다. 등산을 마치고 선착장을 찾아가서 배를 타고, 다음 여정에 가까운 어딘가에서 내려 숙소를 찾으면 된다! 하지만, 하루가 그렇듯, 인생이 그렇듯, 계획은 마음먹은 데로 그렇게 술술 풀리지는 않는 법.


시에라 산으로 향하는 길은 과연 캠핑 장 주인이 주의를 줄만 했다. 가파르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커브 길도 커브 길이지만, 아무리 산길이라 해도 왜 중앙 차선이라는 게 없는 건지, 붐비는 길은 아니지만, 오고 가는 차들은 산등성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야 했다. 와중에, 오토바이 여행족 무리 마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경을 몹시 쓰이게 했다. 결국, 온 신경 줄이 운전대에 묶여있던 나는 시에라 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치고 말았다. 구불구불 산등성이를 간신히 모두 내려온 다음에서야 등산로의 시작이 산등성이 꼭대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야 한다는 것, 오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는 것, 다시 내려 올 일이 아득하다는 것. 결코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현실을 그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을 계속 가야 하니까.

여객선 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시에라산의 명물인 시에라볼텐 (Kjeragolten)까지 계획했던 등산은 중간쯤에서 포기해야 했다. 우리의 발 길이 멈춰야 했던 그 자리에 딸아이는 시에라볼텐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이 작은 예술 작업 내지 즉석 퍼포먼스는 아쉬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미니 시에라볼텐을 바라보며 대자연 앞에 너무나 사소한 인간사와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에 한바탕 웃음을 날릴 수 있었다.


언젠가 이 곳을 다시 찾으리라 소원을 남긴 채, 피오르 선착장으로 씩씩하게 고고!




지도에는 분명 길이 있는데, 길 위에선 그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두 번 다시 이런 운전은 안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산기슭에 숨어있던 등산로 초입의 안내소


자연의 위대함을 담기엔 작기만 한 렌즈


딸이 만든 시에라볼텐 미니어처


소원의 탑


긴 고생 끝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보물.. 르쉐피오르


대자연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사진 중앙 맨 위에 네모반듯하게 깎여진 바위가 프레케스톨렌 (Preikestolen)


배에서 내려 우리가 건너야 할 다리가 저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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