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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Mar 19. 2018

43. 첫 번째 캠핑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행복에 겨워 목이 메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룩한 의식을 거행하듯 램프에 촛불을 밝히고, 별 빛 아래에서 딸의 기타 연주를 듣고, 우리의 보금자리로 기어 드는 순간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우리에게 다가 올 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덮칠지... 대자연 속에 등을 눕히고 바람을 막아 줄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행복했으니까. 낭만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밤이었으니까.

 

우리는 둘 다 캠핑 경험도 거의 없거니와 캠핑 장비를 제대로 갖출 형편도 아니었다. 다만, 아무리 한 여름인 8월이지만 산속의 밤은 추울 것이라는 상식을 바탕으로 텐트 바닥에 깔 매트를 준비하고, 가지고 있던 두툼한 겨울 점퍼와 스웨터 등을 되는 데로 다 싣고 길을 떠났었다. 딸의 친구가 빌려 준 텐트 외에 작은 버너, 쓰고 버려도 좋을 낡은 프라이팬과 그릇 몇 개, 거기에 큰 마음먹고 장만한 폼 나는 접이 식 캠핑 의자가 우리가 준비한 캠핑 장비의 전부였다.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에 잠이 깼다. 그 통증이 추위 때문이라는 걸 그제서 알아차렸다. 잠은 깼지만, 추위에 완전히 포박 당해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 이렇듯 완벽한 추위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로 버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차 안으로 도망가자는 나의 제안에, 딸은 그래도 발 뻗고 자고 싶다고 텐트를 고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두 번이나 차 안에서 달팽이처럼 온몸을 돌돌 말고 자본 경험이 있으니 이해할 만은 했다. 난 덮고 있던 코트를 딸에게 마저 덮어 주고 차로 피신을 했다. 차 안도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다가 죽어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졸렸다.

하지만, 결국은 얼마 되지 않아 차도 버리고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몽사몽 중에 본능적으로 따뜻한 기운을 찾아서 들어 선 곳은 다름 아닌 캠핑 장의 공중 화장실. 캠핑 장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며 열려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역시 비몽사몽 중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딸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죽지 않고 살아서 화장실에서 재회했다. 노르웨이에서의 첫날밤을 화장실에서 보낸 셈이다. 비록 딱딱한 화장실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웠지만, 지금도 화장실로 들어서던 순간의 그 따스한 감각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포근하고 고마운 반전이었던지!




별과 촛불과 음악이 있던 낭만적인 밤

살아서 맞이한 새로운 아침

환희의 끝과 공포의 끝을 오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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