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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옥 Apr 02. 2021

사람들은 한다, 하겠다 참 말도 잘해

누가 갈지 않아도 되는 전구나 만들어 주세요

강남 해체! 평등 서울!

여자 혼자도 살기좋은 서울

서울부터 공정 & 상생 첫날부터 능숙하게

안될거없잖아 서울기본소득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보 꾸러미를 찬찬히 살펴봤다. 우편물은 며칠 전에 배달됐다. 바로 뜯어보고 싶었지만 먹고살기 바쁜 나는 열어볼 수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 주말 근무를 담보로 칼퇴한 금요일 밤, 편의점 4캔 만 원짜리 맥주를 들이켜며, 천천히, 처량히 꾸러미를 풀었다. 


선거 때마다 뿌려지는 공보물만 보면 우리나라는 곧 지상낙원이 될 것만 같다. 나는 이십 년이 넘도록 혼자 살면서 여태 전구 하나 가는 것을 낑낑대고, 십수 년 직장인으로 살아도 매주 먼데이 블루스를 겪는데, 후보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전 지역, 대한민국에 대한 계획과 비전까지 참 잘도 세운다. 이번 후보들 중에서도 누구는 척척 주택을 공급해 준다 하고, 누구는 25만 원씩 기본 소득을 준단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있으니 이런 척척박사도 주기적으로 나온다는 건데 왜 똑똑한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내 삶은 늘 곤궁하고 피폐한가.


대학생 때 존경하는 영문과 교수님이 첫 수업에 '글로 쓰인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고 하셨다. 그때도 공감했지만, 더 살아보니 정말이다. 실현되지 못할 말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상황이 나는 무섭다. 모두가 아는 거짓말을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하는 일이 그거다. 요 며칠 내가 신뢰하지 않는 정책에 대한 광고기획서를 쓰면서 많이 우울했다. 광고 홍보업의 본질은 본질을 포장하는 데에 있다. 몇푼 밥 벌어먹겠다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데에 온 시간을 쓰자니 적잖이 힘들었다.


선거 공보에 쓰인 과감한 단어들이 나는 슬프고 아프다. 그 휘황찬란한 워딩이 진실로, 언젠가, 뜻 그대로 서울시민인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이번 기획서에 쓴 말은 또 누구에게 허황된 희망을 심어 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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