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중 하루는 반드시 청소를 해야 하는데, 지난주에는 주말에도 너무 바빠 건너뛰었다. 덕분에 장장 2주간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지냈다. 어제도 토요일 근무를 한 터라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아침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일에 치여 청소할 시간이 없다고, 소비할 순간도 없는 건 아니다. 내 인생이 처량하게 느껴질 때마다 온라인숍 장바구니를 딱딱 결제하면서 약간의 희열을 맛보았더랬다. 잠깐의 즐거움은 다량의 박스 쓰레기를 낳았다. 분리수거를 위해 크고 작은 상자의 네임 딱지를 긁어내고 테이프를 일일이 뜯어 냈는데, 이 작업만도 족히 이십 분은 걸렸다. 내 분명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겠다고 수십 번 다짐했는데, 또 이렇게 지구에 못할 짓을 했다. 박스 정리를 끝내고 그 새 옷이며 신발 정리를 또 한참 했다. 이런 청소 시간을 할애하려고 그 돈을 썼나, 멍청함을 반성했다.
와인병, 맥주병, 캔도 수북이 쌓였다. 음주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하는 걱정을 또 했다. '이젠 정말이지 알콜성 치매와 간경화를 조심해야 할 때인데...' 그리곤 바로 냉장고로 가서 새 맥주캔을 땄다. 그렇게 맥주 두어 개를 비울 정도로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도 했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뭔 새책을 또 그리 샀는지, 책장정리도 해야 했다. 건조대 자리가 부족할 만큼 넘치는 빨래를 욱여 널었다. 마지막 양말 한 짝을 대충 얹으며 '아, 드디어 끝이구나' 잠깐 기뻤다. "빨래 끝!"이라는 경쾌한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시계를 봤더니 벌써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배가 고파 급하게 우유를 한 잔 들이켜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 또 쓰레기와 설거지거리가 생겼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