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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짜시인 Nov 03. 2017

camino #33

Santiago de Compostela

2017.11.02

마지막날.

산티아고 까지 남은 고작 10km의 거리를 가장 함들게 걸어왔다. 미칠 듯이 쏟아지는 장대비.

신발은 물론 속옷까지 다 젖은 채로 2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걸었다. 첫날 피레네를 넘을때도 비바람을 뚫고 걸었는데 마지막 날도 빗길이라니. 그런데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자 해가 비쳐 배신감까지 느낌. 주여,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숙소는 대성당 앞의 파라도르에 잡아서 12시 미사 전에 체크인. 순례자 미사에서 그동안 카미노릉 함께 걷던 다른 순례자들과 눈인사를 하는데 왠지 모를 동료의식도 느껴지고 뭉클하더라. ‘아, 너도 왔구나. 시바 우리 해냈어’ 이런 느낌.

미사에는 향로로 이상한 의식을 하던데 캐톨릭 신자였던 나도 첨 보는 의식.

생장에서 부터 30일이 넘는 기간을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했는데 충만한 느낌보다는 공허한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이 길은 나를 채우는 길이 아니라 나를 비워내야하는 그런 길이었을까? 앞만 보고 살았던 내게 정리의 시간이었나 보다. 버릴 것들은 버리자. 미련도 후회도. 쌩떽쥐베리가 그러지 않았던가. “완전함이란 더이상 더할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이상 뺄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Thanks to.

생장에서 만나 나의 다리를 도와준 스틱 형제.

내 무릎의 비명을 잠재워준 스포츠 테이프.

물집 한 번 생기지 않고 잘 걷게 해준 내 신발.

잡스 옹의 위대한 선물 아이폰.

내 투덜거림을 말없이 다 받아준 트래블러스노트.

가방 속에서 한번도 나오자 못했던 카메라 GF1.

카미노 친구들 영재, 현정, 두호, 훈, 도현, 탁, 예지, 나현.

그리고

이 여행의 가장 큰 후원자인 나의 아내 현주.

사랑합니다.


순례자를 위한 축복

주님, 이 순례자의 발을 축복하소서.
수 만 킬로를 달려온 수고를 축복해주소서. 모든 무게를 견디어낸 이 발을 축복하소서. 지금의 이 길의 한 걸음 한 걸음과 지금까지 지나온 그의 일생의 모든 길을 축복하소서.
주님, 그의 인생을 축복하소서!

주님, 그의 여행 배낭을 축복하소서.
그의 등 뒤에 지고 있는 무게를 축복하소서. 집을 나서기 전에 자기의 집에 두고온 모든 것, 그리고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축복하소서. 그의 집과 그의 가족, 일, 대인 관계를 축복하소서. 당신의 축복이 매일의 그의 짐을 덜게 해주소서.

주님, 그의 눈을 축복하소서.
당신은 그의 눈을 당신을 바라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길을 갈 때 그의 눈이 당신의 창조물들의 아름다움, 사랑과 봉사의 몸짓의 아름다움과 친밀해지기를.  
그래서 어느날 그들의 눈이 주님을 만나 알아보도록 버릇 들이십시오!

주님, 그의 마음을 축복하소서.
당신이 이 여정에서. 특히 그의 동반자가 되시길.
엠마우스의 제자들처럼 당신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친히 저의 가장 좋은 축복이 되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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