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경영철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서민서패밀리 Apr 16. 2024

개인주의 시대 도래



작가주) 개인적 경험에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해 쓴 글입니다.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한 시기는 2009년이다. 당시 내 나이 만 27세.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나이였다. 첫 과장님이 58년 개띠셨는데 나랑은 24살 차이 띠동갑이었다. 내 아버지 역시 58년 개띠였는데, 사회에서는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던 분들이셨다.


한국의 1차 베이비붐 세대는 보통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4년까지 10년 동안 매 해 출생아 수가 90만 명이 넘던 시기를 뜻한다. 현재는 한해 신생아수가 25만 명도 되지 않으니 격차가 상당함이 느껴질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은 매우 일반적이다.


당시 회사는 베이비붐 세대가 소위 꽉 잡고 있었다. 따라서 그분들의 방식대로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업무처리에서부터 근태관리, 회식에 이르기까지 지금 생각하면 매우 weird (이상) 하지만 당시로는 너무나도 normal (당연) 하게 느껴지던 집단 중심 조직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언제나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이었다.


당시 그분들은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야,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늘 한탄하셨다. 이건 뭐 기원전 점토판에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적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후세대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암튼 그분들의 라떼 타령과 별개로, 내가 느끼기에 회사는 여전히 군대 문화 비슷한 상명하복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상사의 지시는 곧 법이었고 그게 위법이 아닌 이상 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해야 했다.


업무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근태는 상사가 출근하기 전에 출근하고, 상사가 퇴근한 후에 해야 했다. 가끔 집에 가기 싫어하는 상사를 만나면 직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야근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휴무는 경조사와 여름휴가 외에는 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아이들 입학식, 졸업식, 학교 체육대회 같은 것들은  매우 사적인 이벤트로 여겨졌다. 이런 것들을 꼬박꼬박 챙기는 사람은 공사구분에 무차별 곡선을 가진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쉬웠다.


회식은 당일 오후에 결정되는 것이 태반이었으며 상사가 술 먹자고 하는 날은 본인결혼식, 본인상과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냥 따라가야만 했다. 회식장소에 가서도 술 잘 못 마시면 "술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던데"라는 희대의 쫑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술 강요는 없었지만 저런 핀잔 듣느니 그냥 먹고 죽자는 생각으로 주량 넘어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술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술잔을 돌리며 먹었다. 자기 술잔 건네주고 거기에 술을 따라주면 상대방이 먹고 다시 잔을 돌려주고 술을 따르는 방식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위생관념 1도 없는 주법이었지만 당시에는 이게 디폴트값이었다. 감기 걸린 사람도 술잔을 돌렸고 고춧가루 곱게 묻은 본인 잔을 건네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감자 깎던 맨손으로 얼음을 잡고 라씨를 만들어주던 인도 배낭여행이 떠오르기도 했다.


술자리는 1차가 끝나면 2차 노래방 가는 게 일상이었다. 사실 여기까지가 기본이고 3, 4차를 더 가는 경우도 많았다. 한 잔만 먹으면 섭섭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매일 보는 사람들이 뭐 그리 섭섭한 일들이 많은지 차수를 바꿔가며 호프집 투어를 했다. 그렇게 밤새 먹다가 일출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상사가 "오늘 회식 잘 됐다"라고 칭찬을 하면 왠지 기분이 좋기도 했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지 자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고, 역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집단 중심 조직문화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해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특히 2015년 전후로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고 나니 과거 악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생들이 조직 중심이 되면서부터다.


집단 중심 조직문화에 대한 반감과 함께 개선의 필요성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업무시간이 끝나면 '칼퇴'하는 인원이 늘어났고 불요불급한 회식은 서로 피하기 시작했다. 술 권하는 문화도 술잔 돌리는 문화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다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개인중심 문화의 확산으로 돌렸다. 농경문화가 기반이 된 집단 중심 조직문화가 소멸하고 산업화, 근대화 기반의 개인중심 문화가 등장하는 것은 시대흐름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농경문화를 실제로 경험한 마지막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였고 그들의 퇴직으로 더 이상 농경 세대가 조직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였다.


그리고 2020년 개인중심 문화가 정착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매우 높은 질병이었다. 따라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거리 두기와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아울러 마스크 착용과 접촉 제한도 해야 했다. 이러한 규제들은 집단 중심 조직문화와는 상극이었고 개인중심 문화가 강화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규제가 2년 넘게 지속되면서 조직문화 자체가 아예 바뀌어 버렸고 다시는 돌아가기 어려운 수준으로 정착되었다.


전술한 그 옛날이야기를 요즘 젊은 MZ 직원들에게 한다면 아마도 나를 돌도끼 찍는 원시인 혹은 전근대적 인간으로 보지 않을까 싶다. 조직문화가 그만큼 빨리 그리고 완전히 변해버렸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조직 내 있는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퇴직하고 다시 새로운 젊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세대별로 지켜온 문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개인 중심 문화라면 그것도 그 상황에 맞는 것일 것이다. 시대에 맞는 정의가 있듯이 말이다. 그럴 때마다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고 이해와 관용으로 서로를 보듬아준다면 더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