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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Apr 24. 2024

#1. 소백산 국립공원 백패킹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1박


아이와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아이에게 세상은 모든 것이 새롭다. 낯선 만큼 재미있고 본 대로 느낀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보며 행복을 느낀다. 세상을 가르쳐주는 기분이라면 거창하지만,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다. 그럴 때 여행은 좋은 도구가 된다.


너무 어렸을 때는 여행장소가 한정적이었다. 키즈카페, 놀이동산 정도가 가능했다. 거기에서 좀 더 크면 영화관, 뮤지컬 정도 관람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만 4살이 넘어가면서 같이 캠핑을 다닐 수 있었다. 산과 들, 바다로 텐트 싣고 다니며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그렇게 크고 자라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야트막한 산을 작은 배낭 하나 매고 올라갈 정도는 되었다. 등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올해 초 백패킹 도구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배낭과 백패킹용 텐트, 침낭 등등 어딜 가서 하룻밤 자고 올 정도는 되도록 준비했다.


짐을 몸에 싣고 나르는 백패킹은 짐을 차로 실어 나르는 캠핑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장소의 제한이 없는 장점이 있었다. 섬에도 가방 하나 매고 들어가 하룻밤 자고 나올 수 있었고 산등성이에 올라서도 별이 뜬 밤하늘을 벗 삼아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와 색다른 추억들을 만들기 위해 백패킹을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아직 초등 저학년이라 체력적으로는 좀 힘들거라 생각한다. 다만, 적정한 무게의 본인 배낭을 메고 적정한 거리(혹은 높이)를 스스로 감당해 낸다면, 성취감, 자존감 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랐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백패킹이 거리, 장소의 제한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해서 갈 마음은 없었다. 너무 큰 목표, 어려운 목표를 만나 힘들어하기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부터 도전해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등산로가 길지 않아 초보자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소백산 국립공원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거기에 있는 연화봉이었다.


선택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연화봉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왕복 8시간이 필요했다. 초등 3학년 몸과 체력으로 하루 만에 왕복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소백산 중턱에 대피소가 하나 있었다. "제2연화봉대피소"였다. 거기서 1박을 하면서 왕복하면 연화봉까지 등반이 가능해 보였다.


재빨리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https://reservation.knps.or.kr/)을 통해 예약을 했다. 디데이(D-day)는 4월 20일이었다. 나는 등산 일주일 전부터 기상청을 들락거리며 날씨를 체크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맑음"이었던 날씨가 디데이가 다가갈수록 "흐림"으로 바뀌더니 이틀 전부터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새벽 "비" 예보가 뜨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등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초등학생 데리고 가는, 거기다 1박까지 해야 하는 산행에 비라니. 하늘도 무심했다. 그래서 전날인 금요일까지 갈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예보는 끝끝내 바뀌지 않았다. 아내와 상의했고 그 정도는 아이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에 최종적으로는 가기로 결정하였다.


4월 20일 토요일 아침 10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이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백산은 비가 좀 덜 내리기 바라며 목적지로 이동했다. 소백산 죽령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30분이었다. 비가 좀 잦아들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등산화를 신고 우비를 챙겨 입고 배낭을 메고 나니 제법 산행객의 풍모가 나왔다. 입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등산을 시작했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22.011㎢로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다. 원래는 세 번째로 넓은 곳이었는데, 2011년 오대산이 계방산을 편입하면서 네 번째로 밀렸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일부이며 도솔봉, 연화봉, 비로봉 등 1300미터가 넘는 아름다운 봉우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철쭉이 유명하기도 하다.


산행 초입부터 우리를 맞아준 것은 꽤 높은 경사로였다. 죽령탐방지원센터-제2연화봉-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일명 “죽령코스”는 편도 7km이며 대부분이 포장된 임도(林道)로 되어있다. 임도는 임산물을 나르거나 삼림의 관리를 위해 만든 도로를 뜻한다.


초입에 있던 도로 반사경에서 사진을 찍으며 1박 2일 산행의 시작을 알렸다. 배낭에 먹을 것도 든든하고 아직까지 다리에 피로도 없어 표정이 매우 밝다. 그런데 몇 걸음 걷자마자 곧바로 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뿌옇게 보이는 안개비였다.



음산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태초의 풍경을 담고 있는 듯한 풍경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비 위에 큰 우산을 걸쳐 메고 산을 올랐다.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나름 운치도 있고 좋았다. 아이도 그저 상황을 즐기고 재밌어했다.


경사가 가팔라서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아이의 체력을 고려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올라갔다. 중간중간 쉼터에서 쉬어갔는데, 어느새 아이는 다음 쉼터를 기대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게 동기부여가 된다면야 언제든 같이 쉬어줄 마음이 있었다.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하면 아이 본인이 출발하자고 했다. 그럼 또 발걸음을 내디뎠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쉬다 반복하니 어느새 제2연화봉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2시간 30분 동안 4.5km를  걸었다. 경사도 16.4% 의 등산로를 꾸준히 걸어 700m 고도를 등반하며 올랐다. 어른에게는 별 것 아닌 등반이었겠지만 처음 등산을 하는 초등 3학년에게는 큰 성취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등반이었다.


대피소 근처는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우산이 꺾일 지경이었다. 아이와 함께 서둘러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비 덕분에 다행히도 옷과 배낭은 젖지 않았다. 대피소 직원분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자리를 배정받았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이용객이 많지 않아 둘이서 세 자리를 배정받았다.



자리에 짐을 놓은 후 식사를 하러 취사장으로 갔다. 늦은 아침을 먹고 출발해 빵과 핫바로 간식을 한 터라 배가 많이 고파왔다. (물론 산행 중간중간에 초코바와 양갱을 먹기는 했다.) 버너에 불을 올리고 햇반과 3분 미트볼을 끓이고 삼겹살을 구웠다.


예전 내가 혼자 지리산 종주할 때 왜 산꼭대기에서 아저씨들이 고기를 구워 먹지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힘든 산행 후 고기를 구워 먹으면 에너지 보충과 더불어 맛도 있다. 삼겹살을 꽁꽁 얼린 뒤 가져가면 먹을 때쯤 살짝 녹아 있어 굽기도 편하다.


늦은 점심 후에 자리에 돌아가 쉬었다. 아이는 가져온 아이패드로 쿵푸팬더 3 만화영화를 봤고 나는 최근 다시 읽기 시작한 이문열 삼국지를 마저 읽었다. 따뜻한 대피소 방 안에서 둘이 오붓하게 앉아 영화 보고 독서하고 있으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그렇게 쉬다가 7시가 되자 대피소에서 운영하는 "연화에 별을켜다"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대피소 이용객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와 맨 앞자리에 앉아 공단 직원분의 재미있는 강의를 들었다.


소백산국립공원 소개, 소백산천문대와 관련된 이야기, 소백산 꽃 이야기, 점성학, 그리고 연꽃차 시음 등 내용이 알차게 구성되어 1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들었다. 퀴즈도 풀고 상품도 받았는데 우리는 손수건과 예쁜 미우 키링(미우는 소백산 캐릭터)을 선물 받았다. 이 지면을 빌어 국립공원공단 직원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8시에 자리로 다시 돌아왔고 9시 소등 전까지 아이는 아이패드로 e북을 보고 나는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 하여 취사장에 가서 간단히 3분 햄버거로 요기를 하기도 했다) 대피소 직원분이 넓게 쓰라고 세 칸을 배정해 줬지만 아직 혼자 자는 게 어려운 아이와 좁은 한 칸에 끼어서 같이 잠을 잤다. 정말 좁았지만 그래도 살 부대끼며 잘 잤다.



다음날 오전 7시에 기상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짙게 낀 아침이었다. 바람이 잦아든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취사장에서 햇반과 3분 짜장으로 아침식사를 한 뒤 대피소 자리를 정돈하고 짐을 다시 꾸린 뒤 연화봉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연화봉에 올라갔다가 다시 대피소로 내려온 후 죽령탐방지원센터로 내려와야 했다. 거리는 어제보다 더 길었지만 연화봉까지 올라간 이후로는 쭉 내리막이라 피로가 심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연화봉을 향해 걷다 보니 처녀치마꽃과 같이 평소에 볼 수 없는 꽃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비 온 뒤라 달팽이도 여러 마리 보았다. 1시간가량 오르막을 꾸준히 걸었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바깥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대신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연화봉 바로 아래에는 소백산 천문대가 있었다.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소백산 천문대는 1974년 설립된 국내 최초 현대식 망원경을 설치한 천문대이다.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곳인데 우리는 너무 일찍 지나가게 되어 안에는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천문대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연화봉이 나왔다. 연화봉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산봉우리가 연꽃처럼 생겼다고 하여 유래된 것이다. 소백산에만 있는 명칭은 아니고 여기저기 산에 연화봉이 많다. 아마도 옛 조상들이 연꽃을 좋아해서 예쁜 봉우리마다 연화봉이라는 명칭을 많이 붙인 듯 보인다.


아마도 아이에게는 본인이 등반한 첫 봉우리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연화봉을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대피소에서 연화봉까지 2.5km, 연화봉에서 죽령까지 7km로, 하루에 총 10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다만, 연화봉 이후 7km는 꾸준히 내리막길이라 오르막길에 비해서는 좀 덜 힘들 것 같았다.


내려오며 쉼터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고, 잘린 나무의 나이테를 직접 세보기도 했다. 끝없는 내리막길에 다리는 아파왔지만 가끔은 정신없이 웃으며 즐겁게 내려왔다. 막판에는 뒤로도 걷다가 옆으로도 걷다가 내 뒤에 기대서 걷기도 했다. 자기가 요령을 터득해 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긴긴 여정 끝에 드디어 하산에 성공했다. 아이는 환호했고 나는 뿌듯했다. 다음에 또 오자고 하니 아이는 경사가 너무 심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한국에만 100대 명산이 있는데 굳이 여기를 다시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의 기억에는 아마도 첫 산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산을 벗어나 처음 찾은 곳은 맥도널드였다. 무인도를 벗어난 사람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탄산음료라고 한다. 우리는 빅맥, 트리플치즈버거와 콜라, 환타로 1박 2일 만에 세상에 다시 돌아왔음을 몸소 느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내와 둘째 아이에게 우리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밤늦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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