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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Nov 30. 2024

낯선 이와의 조우


1. 


어제는 국회의사당에 갈 일이 있어 9호선 지하철을 탔다. 석촌역에서 급행열차를 탔는데 다음 정거장 즈음에서 내 옆에 누군가 서는 게 느껴졌다. 출근길 혼잡한 터에 누군가 옆에 서는 건 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나는 항상 그랬듯이 이북리더기에 시선을 둔 채 독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 분이나 지났을까. 옆에 선 그 누군가가 내 왼쪽 팔목을 톡톡 쳤다. 


"저기요"


순간 당황했지만 평정심을 찾고 답했다.


"네?"


이북리더기에서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보니 젊은 남성이었다. 수염이 조금 있는 동그란 얼굴이었다.


"혹시 보고 계신 게 뭔가요?"


읽고 있는 책을 묻는 건 아닐 테고, 이북리더기에 대해 묻는 듯했다.


"이거요? 이북리더기예요.."


"제품명이..?"


그는 친절하게 자기 아이패드 미니를 들이밀어주었다. 제품명을 말해주니 네이버에 검색을 했고 나는 정확히 같은 모델이 무엇인지 손으로 짚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북리더기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한 문단 막 읽었을 때, 옆에 선 그 누군가가 다시 내 왼쪽 팔목을 톡톡 쳤다. 


"기계에 PDF도 넣을 수 있나요?"


나는 손수 PDF리더기를 실행시켜 읽고 있던 논문을 보여주었고, 혹시 몰라 밀리의 서재 어플과 예스24크레마 어플도 실행시켜 보여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질문이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이북리더기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한 문단을 읽었을 때, 옆에 선 그 청년이 다시 내 왼쪽 팔목을 톡톡 쳤다. 


"배터리는 오래가나요?"


"일주일은 가는 것 같아요. 잉크 소재라 오래 가요."


"감사합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고 꽤 오랜 시간(이라고 내가 느꼈던)이 지나갔다. 


'다음역은 노량진역입니다'라는 안내가 나왔다. 문이 열리려는 찰나에 그 젊은 남성은 내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짧은 인사를 했고 나도 "안녕히 가세요"라고 답했다. 


그는 내렸고, 나는 이북리더기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지하철에서 누가 내게 말을 건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금세 잊고 책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했다.



2. 


아침에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내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한 일이라며 재밌어했다. 


정오 즈음되어 나는 수영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토요일 1시~3시 타임은 매우 한가로워서 평온히 자유수영하기 안성맞춤이다.


분당에 위치한 탄천종합운동장 수영장은 50미터에 레인도 많아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3,600원 일일 이용권을 구매하면 락커 번호가 인쇄된 종이가 출력된다. 그걸 가지고 가서 먼저 신발을 넣어야 한다.


145번이 출력된 종이를 가지고 내 신발장이 어디 있지 라며 훑어보던 찰나 옆에 선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


상대의 얼굴을 보니 장년의 남성이었다. 50~60대의 평범한 아저씨였다. 그런데 수영장 신발장 앞에서 느닷없이 도와달라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네?"


"저 시각장애인이에요."


순간 시선을 옮겨 그분의 손을 보니 접이식으로 된 시각장애인 지팡이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분은 내게, "보통은 도와주시는 주사분이 계신데, 오늘은 바쁘신가 보네요."라며 도움을 요청하셨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혹시 번호표 가지고 계세요?"라고 여쭤보았다.


마침 번호가 내 근처에 있는 거였다. 나는 조심스레 신발장을 열어드렸고 위치를 알려드렸다. 그분은 본인의 신발을 넣고 열쇠를 잠갔다. 많이 와보신 듯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나는 "락커까지 같이 가실까요?" 하면서 그분 손에 오른쪽 팔목을 넣어드렸다. 


그렇게 그분을 이끈 채 천천히 그분 라커로 이동했다. 자물쇠 위치를 알려드리니 본인의 열쇠로 능숙하게 열고 옷걸이를 확인하셨다.


나는, "옷 다 벗으시면 제가 다시 올게요."라고 말씀드리고 내 락커로 가서 옷을 벗고 다시 그분께 갔다.


그리고 다시 그분 손에 내 오른쪽 팔목을 넣어드렸고, 둘은 수영복과 샤워도구를 손에 든 채 샤워장으로 이동했다.


"평소 짐 두는 장소가 있으세요?"


"수영장 올라가는 계단 앞에 둬요."


나는 그쪽으로 이동해서 그분이 평소 두는 위치에 짐을 둘 수 있도록 위치를 알려드렸다.


역시나 능숙하게 짐을 두고 난 후 나는 샤워기 앞으로 그분을 데려다 드렸다.


그분이 샤워하고 수영복을 입는 동안 나 역시 옆에서 샤워하고 수영복을 입었다.


다시 그분 손에 내 오른쪽 팔목을 넣어드렸고, 둘은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계단을 오르는데, 옆에 같이 오르던 노인분이 "시각장애인이신가 보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와 함께 계단을 오르셨다.


"평소에 어떤 레인에서 수영하세요?"라고 여쭤보니, 


"가장 끝쪽에서 두 번째, 6번 다이빙 대에서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주말이라 모든 레인을 개방하지만, 평일 자유수영은 가장 끝 쪽에서 3개 레인만 개방하기에 이 분의 레인선택으로 보아 평소 평일에도 자유수영하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평일 퇴근 후에 시간 나면 자유수영하러 가는 나도 그래서 그 레인에서 수영을 한다.


레인으로 가는 동안 그분은 내게, "수영장 자주 오세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네, 자주 와요."라고 답했다.


레인에 도착해 다이빙대 위치를 알려드리니 아주 능숙하게 물에 들어가셨다. 


나는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며 잠시 서서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어떤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xx 씨 맞죠?" 하시면서 그분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셨다. 수영장 오가며 만난 사이신 듯했다. 


나는 옆 레인에서 수영을 했다. 매 시간 50분에는 휴식시간이어서 종소리가 나면 모두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는 보통 50분 동안 수영하고 집에 가기에 물 밖에 나와 옆 레인으로 갔다. 


나는 그분에게 "아까 도와드린 사람인데, 혹시 지금 가시나요?"라고 여쭤보았다. 


"아니요, 한 타임 더 하고 가요." 


나는 "저는 이제 가야 해서요. 가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인사드린 후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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