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자전거를 타다 풍경이 너무 멋져 그대로 멈춰버렸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순간 서울이 느닷없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연휴 마지막날 늦더위 때문인지 한강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멋진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멀리 남산타워 아래로 청담대교와 영동대교, 성수대교가 겹쳐 보였다. 옅은 바람 덕분에 한강은 고요했고 나는 풍경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구름 사이 늦여름 햇살이 하늘에 입체감을 더하고 있었다. 낯선 그 모습이 서울의 풍경을 밀도 있게 채우고 있었다.
이번 추석은 너무나 더웠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연신 땀을 흘리며 뛰어다녔고 그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엔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들의 손에는 어느새 아이스크림이 쥐어져 있었고, 주름진 손으로 부치는 손부채는 작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히기에 충분했다.
길지 않은 연휴기간 손주들과 꽤 많은 추억을 쌓으신 부모님은 집으로 올라가는 차에 과일과 음식을 가득 실어주셨다.
그러면서 얼른 올라가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셨다. 손주들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손을 흔들며 이별을 재촉한다. 애절한 풍경이다.
"기록적인 폭염", "폭염특보" 같은 단어가 언제 사라질지, 과연 사라지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드는 날씨다. 그럼에도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멋들어진 가을의 단풍 역시 우리 곁에 슬그머니 다가올 것이다.
아버지가 태국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직접 그리신 10호짜리 유화를 선물로 주셨다. 몇 달 동안 끙끙 고생하며 얻은 본인만의 작품이었다.
65세 넘는 나이에 혼자 해외로 배낭여행 가고 거기서 얻은 풍경사진을 직접 그리는 걸 노년의 취미로 삼고 계시는 열정적인 분이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생업에 뛰어드셔서 정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뚝딱뚝딱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시는 걸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60세 이후를 인생의 황혼기라 한다. 계절로 따지면 낙엽이 지는 가을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그런 황혼기를 마치 초봄처럼 치열하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경험과 경륜으로 더 여유롭게 세월과 싸워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의 가을이 왔을 때 교훈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내게도 가을이 올 것이다. 그 가을 어찌 즐길 수 있을까, 여전히 더운 열대야 속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