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하면서 대학원 다니는 것도 가능할지 걱정스러운.....
스무 살이 넘어간 이후로 한 해 한 해 같은 모양으로 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매 학기 수업을 듣곤 했지만 수업마다 시간은 달랐고 듣는 수업의 내용도, 과제도 천차만별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도 매번 달랐고, 내가 선택하는 교양의 분야도 다양했다. 수업은 아주 일부이고 동아리 활동이나, 인간관계에서 겪는 사건들까지 더하면 매해 아주 스펙터클했다. 나의 감정이 크게 요동쳤고 '사건'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여렸고 나약했던 나에게 아픈 생채기를 안겨주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스무 살 이후로는 어떤 해에 어떤 머리스타일을 했고, 어떤 가방을 들고 다녔는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때의 감정과 사건이 아주 강하게 남아서 많은 장면들을 기억하게 된다.
대학교를 졸업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건들이 막 소용돌이치는 시간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선택하고 결심해서 만들어진 시간들이 많아서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가 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도록 하고 싶었던 시간들이어서 주변 사람들과 자주 꺼내어 보는 시간들이라 어제처럼 생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 수많은 강의, 특히 여행 같았던 출장, 아무런 소득 없이 만들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들. 막 벌여놨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굳은 믿음 때문인지 힘들었던 순간들도 아주 예쁘게 포장되어 있기도 하다. 꺼내어 볼 때마다 즐겁고 다시 힘이 나도록.
그런데 최근 몇 해 동안에는 꺼내어 볼 시간의 조각이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택이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가 되었다. 좋아서 선택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아니면 좋아서 선택하는 일들은 여전히 많지만 하기 싫은데도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그 괴로움에 나의 행복, 즐거움이 기를 못 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년 한 해는 그리 괴로울 일도 아닌 것에 힘겨워했고, 그 힘겨움을 극복하며 컨트롤하는 연습에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열심히 훈련을 해온 끝에 2022년 하반기엔 미뤄왔던 일을 드디어 해치우는 성과를 내고, 엄청난 결심을 하는 용기를 냈다. 그것이 대학원 진학과 결혼이다. 대학원 진학은 학부생일 때부터 꿈꿔 온 일이지만 어떤 것을 전공하면 좋을지, 과연 대학원을 가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 내가 과연 논문을 쓰고 석사를 따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필드에 있으면서 많은 분들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봤고, 어쩐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2022년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아직 수입이나 많은 것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급하게 도전할 수 없어 1년을 미뤘다. 일단 넣어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아주 다행히 합격했다. 그동안 강의만 하던 삶에서 연구를 하는 삶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아주 괴로운 선택들을 하는 와중에 나를 늘 즐겁게,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은 예비신랑이 될 남자친구와의 시간이었다. 지치는 일상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쉼터 같은 사람이었고, 1년 동안 서로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남자친구도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며 평생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실제론 엄청 스무스하고, 하루 만에 이루어진 프러포즈는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큰 고민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함께 하면서 결혼 생각은 없다고도 했고, 결혼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고 했지만, 어쩐지 나는 프러포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 결혼 소식을 지인들에게 알리니 혹시 비혼주의자라고 말해온 것이 거짓말이었냐며 놀랄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결심을 한 결과 2023년은 다시 학생으로, 또 혼자가 아닌 배우자와 함께 사는 한 해가 될 예정이다. 글로는 엄청 태연하게 담담하게 담아냈지만 실제론 이런 결심을 하는데 쉽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고 둘 중 하나만 해도 긴장되고 어려운데.. 대학원과 결혼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니! 내가 해낼 수 있는 영역인지도 입학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없다. 그런데 어떡하나 이미 내 운명, 올해의 거대한 계획과 목표를 이미 다 설정해 버린 것을 이제 등록금도 내버렸고, 스드메 계약도 한 이상 빼도 박도 못한다. 그러니 감내하고 내가 선택한, 벌여놓은 일을 책임지는 수밖에! 두려우면서도 하나하나 해치울 때마다 뿌듯할 미래의 내 미소를 떠올려본다. 방방 뛰면서 해내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