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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30. 2024

[여름기행4] 낮고 푸르른 경주. 그곳에 가면

당신에 생애 주기에는 어떤 도시가 묻어있나요? [2024]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이 왔다. 9월 중순까지 찜통더위는 계속됐고 추석을 넘기고 나서야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추석 끝자락에 쏟아진 비가 날씨를 180도 바꿔놓았다.


초가을의 저녁, 에 앉아 다시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전 세계를 누비며 글을 쓰겠다는 나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책상에 가서 그 얼음같이 냉혹한 백지의 도전을 받아들여라."

(미국의 수필가, J.B. 프리스틀리)


글은 영감이 떠올랐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리고 영감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 낮고 푸른 유적의 고장, 경주


연휴를 잠깐 빌려 다녀온 경주. 경주는 어릴 적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기억 외에는 특별한 연고가 없는 곳이다. 


어떤 인연일까. 장작 5시간을 달려 만난 경주는 굉장히 푸근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많은 걸 느꼈다. 돌아갈 때 "언젠가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남긴 여정이었다.



경주에는 건물이 낮고 평평한 초원이 많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봐도 서울에선 흔한 초고층 빌딩조차 하나 없다. 다른 지방 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시멘트로 방치된 땅 하나 없이 공원이나 초원으로 사방이 덮여 있다. 그래서 시선에 거침이 없다. 여행 내내 눈이 편안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작은 바다였다. 왠지 모르게 바다를 마주해야 여행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바다는 순수한 오감을 자극한다. 내가 이 세상의 소모품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 준다.


경주의 바다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문무대왕릉 정도다. 하지만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보고 싶은 자연이 있다면, 그곳이 관광지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삶의 애환이 녹아 있다면, 내가 가는 그곳이 곧 여행지다.


경주 문무대왕릉 근처의 바닷가 일대와 EGO카페에서 먹은 디저트와 음료


아주 평범한 돌섬처럼 생긴 문무대왕릉은 '허묘(실제 무덤이 아닌 가짜 무덤)'라는 설이 있다. 왕을 기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얘기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파도가 치는 깊은 바다에 돌무덤을 세우려 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충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역사 속에는 우리가 다 헤아 수 없는 마음들이 참 많은 듯하다.  


줄지은 민가 앞으로 푸른 해변이 쭉 펼쳐졌다. 유명한 해수욕장이 아니라 그런지 나지막한 느낌이 들었다. 자갈밭에 앉아 한동안 파도에 귀를 기울였다. 편해지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일부로라도 그러려고.




경주 불국사 내 풍경


경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국사. 연휴라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있었다. "스님들이 도를 닦는 곳에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가도 되는 걸까?"생각도 했지만, 불국사는 이미 아주 오래된 관광지다. 몇 년 전부터는 입장료도 폐지돼 더 많은 이들이 산책코스로 찾는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연등과 함께 많은 불도들의 염원을 담은 쪽지들까지. 어떤 종교든 무언가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을 담는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불국사 안을 걸었다.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4대 천왕(천왕문)의 모습이었다. 각자 다른 무기를 들고 선 그들은 무엇을 지키고 심판하려는 걸까. 지구를 입에 문 용을 잡고 서 있는 천왕의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불국사 천왕문에 서 있는 사천왕의 모습




▲ 낭만의 밤이 있는 도시, 경주


경주가 지방이라 밤에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어쩌면 경주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빛마저 한국적인 '동궁과 월지'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한 '경주중앙시장'까지. 찬란한 유흥이 아니라도 소중한 사람과 오붓이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많다.


지방 도시의 야시장은 늘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일본의 몇몇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정감 있는 축제의 모습처럼 낭만을 느끼게 한다. 물론 유흥의 온상지로 변모한 곳들도 많겠지만 경주중앙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지역민과 관광객이 적절히 어우러져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절제된 분위기였다.     


경주에서의 가장 큰 추억은 '걸음'이다. 유적지와 무덤, 호수를 낀 초원이 많은 만큼 어딜 가든 걷게 된다. 궁을 걸으며 평소 일상에서 하지 못했던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푸른 자연, 유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함께 경주에게 가자고 청해보라. 단, 자극과 액티비티를 원한다면 '경주월드'를 추천한다. 


동궁과 월지, 1시간여 걸으며 멋진 호수와 기와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는 야경 산책 명소

 

경주중앙시장, 약 15~20개의 노점상 음식 중 4개를 단돈 12,000원에 맛볼 수 있는 코스, 맛있지만 꽤나 자극적이니 주의할 것.





사람들로 가득한 경리단길의 얘기는 피곤한 관계로 생략한다. 경주에 가면 방문하게 될 테니 직접 가보길 추천한다. 한 가지 여담을 하자면, 경주에서 돌아오며 "노후에 살기에 참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조금 나이가 들고 난 후 난 어디서 살면 좋을까? 나 스스로에게, 나의 거취를 묻게 된 계기였다. 여행을 갈 때 마다 생각한다. 훗날 나는 어디서 살고 싶을까 하고.


"경쟁이 아닌 동행이 평균인 곳에서, 그리고 기술이 아닌 지혜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에 살고 싶어. 조금은 느리게 갈 수 있는 곳 말야."


숙소에서 만난 수영장


AI 달리 그림. 이 글의 느낌을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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