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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라는 재능, 낭만이라는 숙명

'낭만 러너 심진석' 선수를 보며

by 글로

글을 쓰는 시간이 부쩍 줄어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순수함을 잃지 말라는 말. 언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글을 썼으며, 시간이 있어 글을 썼는가. 자투리 시간, 아니 없는 시간도 짜내 밤새 시를 써 내려갔던 때가 있었는데 근래에 그런 열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스마트폰에 빠져 낭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이건 분명히 반성해야 할 일이다.


관성에 젖고 세월 앞에 무너지고,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술 패권주의 속에 인간성을 묻어버린 것처럼, 스스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일이 바쁘다고? 할 게 너무 많다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환경을 핑계 댈 여유는 없다. 차라리 목적의식이 흐려졌다거나, 내 마음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환경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을 직접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환경을 탓하지 말라"는 교훈을 온몸으로 증명해 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낭만 러너'라고 불리는 심진석 씨다.


요즘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면 그의 영상이 제법 많이 올라온다. 러닝을 좋아해 알고리즘이 그를 추천해 주는 면도 있겠지만, 요새 어딜 가나 그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건 사실이다.



그의 별명은 '비계공 러너'다. 장애와 지병이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놀라운 건 그의 출퇴근 모습이다. 그는 작업복과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하루에 무려 왕복 15~16km를 뛰어 출퇴근을 한다. 따로 훈련시간을 내는 게 마땅치 않아 그렇게 훈련을 한다고 한다.


흔한 러너들이 말하는 비싸고 좋은 러닝화, 화려한 장비와 일급 훈련법, 달리기 주법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오직 숨 가쁜 삶 속에서 달리고 또 달리는 일, 생계의 현장을 곧 레이스로 만드는 일. 그것만이 그가 장착한 유일한 장비다. 바로 '순수함과 노력'이다. 그 보이지 않는 장비로 그는 풀마라톤을 2시간 30분에 주파, 수많은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를 보며 감명을 받는 이유는 꾸밈없는 모습과 마라톤에 대한 순수한 열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참가한 행복한 가게 마라톤 대회에서 그를 우연히 목격했다. 사진을 부탁하자 어색한 듯 밝게 웃는 그는 기꺼이 미소를 내어줬다, 레이스에 집중하기도 버거웠을 텐데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그 또한 그가 지고 있는 하나의 짐처럼 느껴졌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순수함이 곧 재능이구나. 그리고, 그의 유니폼에 붙은 '낭만'의 의미는 그 삶에서 나온 숙명과 같은 거구나" 하고.


그를 응원하는 많은 이들의 말처럼, 러닝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재능이 누군가에 의해 변질되거나 훼손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의 숙명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를 보며 든 또 하나의 생각, 이것저것 핑계를 댈 필요가 없다는 사실. 모 기업의 슬로건 'JUST DO IT'처럼 그 생각을 넣어두고 한 번 더 도전하는 게 필요하다. 글쓰기에 있어 부쩍 핑계가 많아진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반지하 다락방에서 새벽 3~4시까지 시를 쓰며 혼자 웃고 울고 감상에 젖었든 그때가 생각난다. 그립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왠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지금도 마음을 먹으면 그때처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 선수의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보다 보니 그가 자주 하는 말 하나가 떠오른다.


"아, 괜찮아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헤헤"


11월 1일 JTBC 서울마라톤 당시 달리는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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