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을 잃어버린 대중들과 언어의 회복자
가을의 언어가 '친절'이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불친절의 계절이 모두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많은 불친절들이 세상에 고통을 주고 있다. 좋은 계절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가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갈'이 되어버렸다. 사라진 계절, 찰나만이라도 그 서늘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올해는 더욱 가을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흔한 단풍놀이 한 번 제대로 떠나지 못했다. 친절하고 따스하고 선선한 바람이 순식간에 떠나가고, 매서운 칼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어깨를 움츠린 사람들은 저마다 건조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얼마나 멀어졌는지도 모른 채, 양극단의 계절을 닮아간다.
얼마 전 살아있는 가을을 만났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출근길 버스에는 수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붙어 출처모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콩나물시루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속으로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그 냉기를 녹인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차벨 소리와 함께 출처모를 음성이 울렸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친절하고 상냥한 인사였다.
진심을 담아 건넨 인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버스 기사 아저씨였다. 그분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손님들이 하차할 때마다 정성 어린 축복을 건넸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매 정거장마다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별 말은 아니지만 그분의 말은 분명 별말이었다. 얼마 후 승객들도 그에게 하나둘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마치 무관심으로 멍든 계절을 서로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가을을 선물했다.
말 한마디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건넬 수 있는 선물 아닌가. 특히 말 하나하나를 곱씹어보고 고민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런 언어들이 더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따스한 인사를 건넸던 아저씨의 하루에는 감사함이 넘쳐흘렀을 것이다.
옆구리 시린 겨울이 왔으니 언어의 온도롤 좀 더 높여야겠다. 꽁꽁 싸맬 수밖에 없는 시절에 마음마저 그러고 다니면 이 계절이 너무 서글프니까. 불친절한 세대 속 방치된 이들의 소식이 자꾸 눈에 밟힌다. 가진 자들의 크리스마스와 가지지 못한 이들의 크리스마스는 분명 다를 테니. 예수는 가지지 못한 자들과 함께 했는데, 왜 이 세대는 왜 그날들을 부유한 자들에게만 알리고 있는가.
돌아보면, 우리의 무관심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정말 많은데 어느새 우린 또 새롭게 가지지 못한 것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계절만이 아니다. 친절한 마음 그 주위를 한없이 맴돌던 사랑의 추억들, 그리고 입속에 간직했던 배려의 언어까지. 혹독한 겨울에 더욱 간절하게 언어의 온도를 회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