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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문을 열고서

by 글로 나아가는 이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서 그 아득한 길을 걷는다. 예식을 50일여 앞두고서 나는 여기에 '연애'라는 짧은 여정에 대한 식견을 남겨둔다. 이 경험의 깊이는 매우 얕을 수도 의외로 깊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오랜 만남 속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지붕과 벽이 없는 야생의 길을 한 사람의 손을 붙잡고 가까스로 걸어왔다면, 이제는 그 길 주변에 하나의 울타리와 지붕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을 더욱 안전하고 아름답게 꾸며 가야 한다. 예전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젠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붙잡고, 서로의 세월을 단단하게 익혀가야 한다.



결혼이라는 방 안에 여러 문들이 줄지어 있다. 복도를 걸으며 나는 또 일련의 문들을 열고 닫을 것이다. (각각의 문 뒤에는 여러 가지 세계가 펼쳐져 있다) 분명히 그 문 중에는 내가 열어서 안 되는 문도 있을 터, 항상 문고리를 잡기 전 다른 한 손을 잡은 그녀와 눈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 문 뒤에서 부는 바람의 온도와 방향을 느끼기 위해 더욱 신중한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결혼을 앞둔 나의 생각이다.


지나고 보면 금방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 자리에 와 있다.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결혼은 어떤 날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표현이 있다. 어디서 나온 문구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로 아름다운 말이다. "어떤 측면에서?"라고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할 자신은 없다. 문장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사랑의 첫 삽을 뜨려고 하니, 오래전 감명받았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이건 문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상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세 번째 오류는, 사랑에 '빠진다'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에 '머물러 있다'는 상태를 혼동하고 있는 데 있다. 우리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서로 전혀 모르고 지냈던 두 사람이 그들 사이에 놓여있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 있는 경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고립되어 사랑 없이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멋지고 기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갑자기 친밀해지는 이 기적은 특히 성적 매력과 성적결합에 의해 주도되고 이와 결합될 때 더욱 촉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사랑은 그 성격상 지속적이지 못하다."


(중략)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능동적인 특징을 나타낸다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에리히프롬, '사랑의 기술' 中



사랑은 운명도 환상도 아니라, 결국 현실과 노력 그리고 그를 부단히 배워야 하는 기술의 영역이라는 말. 처음엔 인정할 수 없었다. 사랑이, 그 위대하고 낭만적인 사랑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적잖이 감성적인 내게 사랑은 늘 낭만 그 자체였기에, 지나치게 분석적인 그의 사상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뜬구름 잡는 개똥철학이 깨지기 시작한 건 지금의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만남이 삐걱거리는 순간마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적잖이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열등감, 때론 도망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 잡혔다. 만약 그때 그런 생각과 말들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그녀는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때 알았다. 그래도 내가 사랑을 위해 노력이란 걸 했구나 하고. 표정과 말투, 습관과 생각까지도 사랑을 하려면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결혼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인데 생활의 변화 없이 그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물론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수천번 수만 번 더 깎여야 한다.


조금 건방진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을 넘어, 여전히 사랑을 운명이라고 믿으며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사랑을 하든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각자의 인연 속에서 사랑을 결혼으로 성숙시킨 방식이 다를테니, 그저 각자 깨달은 방식대로 서로를 열렬히 사랑해 주면 된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에는 아주 가느다란 민들레씨 같은 사랑의 씨앗이 매번 뿌려지지만, 그를 어떻게 키워낼지는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당신의 분무기에는 사랑이 얼마나 담겨있는가. 기술이든 느낌이든 운명이든 그걸 담아내는 건 늘 당신의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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