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는 바람은 막을 수 없지만, 돛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아직은 여름이지만, 입추가 지나고 바람의 온도가 조금은 선선해졌다. 외할머니댁인 단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단양은 평온 그 자체였다. 마음을 편안케 하는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 별이 밤하늘에 선명히 박힌 밤, 다락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동안 있었던 잡념과 스트레스가 모두 씻기는 것만 같다. 자연의 멋에 취한다고나 할까. 그건, 서울에서는 받을 수 없는 치유의 일종이다. 이곳에선 도시 생활에서 쌓였던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순박한 웃음으로 손주들을 반겨주신다. 80이 넘은 연세라 거동이 조금 불편하시지만, 여전히 글공부와 걷기 운동에 열심이시다. 한 가지 걱정은, 외할머니와 함께 약 10년을 동거동락한 가족인 강아지 '꼴이'가 집을 나섰다 돌연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번을 찾아 나섰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유기견 보호센터를 운영하는 외삼촌의 추측으론, 근방에 있는 개장수가 잡아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추측일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비어있는 꼴이의 집을 보며 '한동안 마음이 허할 것 같다'라고 했다. 어떤 마음이신지 모르지만 외할머니는 한동안 꼴이의 집을 멍하니 바라보시더니, 그 이후론 꼴이 굳이 꺼내지 않으셨다. 마치 언젠가 떠날 걸 알고 계셨다는 듯이. 괜스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정말 다행히도, 이 글을 쓴 다음날 꼴이를 찾았다고 한다. 동네의 어떤 아저씨가 발견해 자신의 집에 묶어놓고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집으로 잘 돌아오는 강아지를 왜 거기로 데리고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꼴이가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걱정을 잊기 위해 내려온 시골(외할머니댁)에서도 걱정거리는 늘 생긴다. 가족들은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시골로 온다. 굳이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걱정이 없는 식구는 없을 것이다. 마구 털어놓고도 싶겠지만 더 큰 짐을 짊어진 서로를 보며 위로를 받고, 때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웃어 넘기기도 한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앞에 놓인 걱정거리가 참 많지만 서로의 걱정을 해결해주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것. 그게 가족의 힘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이 마인드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어떻게든 되겠지 [우치다 다쓰루]'이다) 치열하게 계획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해서 달라진 것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러한 노력이 모두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의 노력만을 너무 믿지는 말라는 것이다. 노력했다고 결과가 반드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한 개인의 노력을 넘어 수천 년 숱하게 세워온 인간의 계획이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강물이 흐르듯, 나의 양심과 선한 기준을 따라 성설히 살면 어느새 내가 가게 될 길을 그대로 걷고 있을 것이다. 다쓰루가 말한 '어떻게든 되겠지'는 이런 차원에서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지 말 것,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참지 말 것, 결국 가는 곳은 같을 테니까."
(우치다 다쓰루)
다쓰루 선생은 크고 작은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 이 작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신의 천성과 하고 싶은 일(물론 없다면, 언젠가 찾아질 테니)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언젠가 그 방향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는 조언이다.
비교에서 오는 불안, 조바심과 노파심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어느 정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유연성은 꼭 필요하다. 모든 걸 놓아버린다는 게 아니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또 해보는 용기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시작도 하지 않게 되니, 그보다 '뭐라도 되겠지'라고 믿으며 해 나가야 한다.
부는 바람은 막을 수 없지만, 돛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 인생이라는 바람은 우리를 외딴섬, 혹은 당신이 원했던 유토피아로 데려가 줄수도 있다.
태도를 곧게 펴자. 바람이 당신을 태도에 맞는 삶으로 인도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