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처음 느끼는 기분
서른이 되던 날을 기억하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꽤 좋았다.
그때 아직 생일안 된 어린 '빠른'년생들은
괜히 놀리며 기분을 물어왔다.
허세나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정성 들여 내 기분을 설명했었다.
이렇게.
20대 내내 안갯속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고.
앞이라도 보이면 불안이란 감정이라도 없을 텐데
발도 안 닿고 앞도 안 보이는 기분이었다고.
그래도 일단 팔은 내저으며
발은 멈추지 않아야 할 것만 같아서
무식하게 그냥 노력만 했었다고.
그리고 막상 그땐 몰랐는데 서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그랬더라고.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슬펐다는 건 아니다고.
그저 좀 불안할 뿐.
근데, 30대가 되고 나니,
안개가 걷히고 방향이라도 보며 갈 수 있게 되고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긴장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정감'을 가지니 '자신감'도 가지게 해 줬다고.
그래서 서른이 된 나는 내가
의외로 꽤 좋다고 설명했다.
맨 정신으로.
2023년,
마흔의 마음으로
서른이 되었던 그 기억을 비교해 보았다.
우습게도,
서른 살의 날들조차 십 대 정도였구나 깨닫는 것이 가장 먼저였다.
서른 정도는 고작 100M 달리기를 마치고 달려와 결승선 근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초등학교 6학년 같다. 아직까지 엄마 아빠가 응원에 힘내고 선생님의 노트를 기다리는 초등학교 최고학년 - 6학년.
숨을 고르며 물도 마시며 마구 뛰는 심장을
어떻게든 조절하려 애쓰는 그중에
완주에 안도감도 반, 더 열심히 뛰어야 했나 하는 후회 반으로, 흙먼지 가득한 결승선을 보는 그 정도가 서른이었다 싶다. 지금 보니까.
나는 지금 마흔 그리고 6개월 정도 지났는데
숨은 물론 차지 않고 팔다리 근력이 생기다 못해
노련미 있는 아마추어 마라토너 정도는 된 듯하다.
아까 뛰어온 흙먼지 길 정도는 산책을 하듯
다시 걸음을 뗀 그런 기분이다.
20대에는 내내
앞만 보며 뛰느라, 주변은 보지도 못했고
30대에는 그날들이 결승선인 줄 알고
결과가 전부인 듯 내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천천히 산책정도 마음이 생기고
속도에 욕심내지 않고
결과에 일희일비 않으며
내 속도와 감정에 솔직하게 조절할 수 있으니
걷는 걸음걸음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흥미롭고 즐거울 것 같다.
걷다가 다른 길이 흥미로우면 들여다보기도 하고,
같이 갈 누군가를 기다려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힘들면 앉아서 같이 걷던 사람과
그리고 손잡고 뛰던 옛 친구들과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천히.
어쩔 수 없는 것엔 웃어 넘기기도 하며,
아닌 것에는 눈치 안 보고 아니라고 하며,
그렇게 산책하는 듯한 마음이
지금 마흔의 내 기분이다.
오십의 내가 이 글을 보면 이불을 차거나,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