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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Feb 18. 2024

금수저를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

평범함 속의 비범함


출근길 엘리베이터,

늦은 결혼으로 늦게 딸을 얻은 팀장님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낑겨 있었다.

어쩌다가 시선의 각도가 맞았는지, 팀장님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고 어린아이를 유학 보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유학원, 미국 유학, 유아 영어 교육 등.


이제 유치원을 다니게 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벌써부터 유학원을 알아보고 계신 듯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내 자리로 가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학교를 다닐 때는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던 것 같다.

학자금 대출이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학교에서 하는 근로장학생에 지원하는 동기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름대로 운이 좋아서 큰 조직에 들어와서는 주변에 다 먹고살만한 사람들, 아니, 큰돈을 턱턱 쓰고 좋은 집에서 전세를 얻어 차근차근 자산을 형성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저 사람 아빠가 의사라더라', '저기 부모님은 건물이 있대', '사업하는 집안이라던데'와 같은 이야기들을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듣는다.


동기들 뿐만이 아니다. 팀 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 발렌시아가 신발 신고 다니는 차장님 있지? 그분은 취미로 회사를 다닌다고 하더라. 엄청 부자이고 집도 뭐 강남인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인지 팀장님한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잖아."


"역시 부럽네. 주머니가 여유로워야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건가 봐요."




사업을 하지 그랬어


예전에 부모님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는 대한민국 스토리의 클리셰이다. 

IMF는 아직까지 단골 키워드고, 한 때는 주식하다가 망했다더라가 유행했다.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이 도래한다. 

MZ세대와 90년대생 사이로 승진과 야근보다는 자유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어렸을 때 빨리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하자는 이른바 "FIRE족 -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가 유행이 됐다. 


한탕주의 8천만 원짜리 비트코인의 붐이 일었고, 이제는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바보가 됐다. 기본이 미국주식이고 미국주식에서도 테슬라 3배짜리를 샀어야 했다느니 코로나 때 엔비디아에 투자를 했어야 하니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며 부동산에 물린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영끌했던 90대생들은 후회의 시작이다. 그때 부동산이 아니라 주식을 샀으면 진즉이 은퇴했을 거란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이 나왔다. 웹 사이트도 대박을 쳤다. 법인을 세우고 직원 수는 두 자릿수가 넘었단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너도 컴퓨터 잘하잖아. 그때 그 사람하고 같이 사업을 하지 그랬어."



그래서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졸업 후에 거의 돈을 위해서 살아온 것 같다. 아니,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 인생 속에서 기억할만한 것이 무엇인가 싶었다. 좋은 친구 관계를 얻었나? 창업 과정의 고난과 역경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나? 고연봉의 직장인으로서 자산을 형성하기라도 했나?


남은 것이라곤 몇 개의 명함과 작은 연애 경험들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있는 내 팔자주름뿐이다. 나는 흔히 정부의 지원사업에서는 해당하지 않는 소득 구간이지만, 소득세는 많이 내면서 빚은 많은 "잡 푸어 Job Poor"가 아닐까 싶다.



넌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는 동기 중 한 명이 집안이 매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그 친구의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안 계셨고, 학비는 스스로 벌어야 했으며 집안의 거처를 위해 큰 빚을 낸 것은 물론 결혼은 거의 반 포기 상태란다.


그렇게 공부를 잘했지만 개선이 되지 않는 삶을 보며 안타깝기도,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당신의 소득의 90%는 엄마 뱃속에서 정해진다는 유튜브 제목이 떠오른다. 재벌가의 회장도 지금의 나도, 저기 힘든 이야기를 하는 내 동기도 결국 룰렛을 돌린 결과물인 것일까.



결혼과 미래


주변 사람들이 결혼은 하는데 아이를 안 가지려고 한다. 대학원 동기들은 대부분 결혼했지만 아이를 갖는 비율은 10%가 안 된다. 다 연봉이 억대는 주는 좋은 직장인데 말이다.


"야,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아이냐. 나중에 생각해 보지 뭐."라고 이야기했던 동기는 어느덧 서른 중반. 여차하면 곧 마흔이 될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부동산 가격일까, 급격한 성장일까, 아니면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문화인 걸까.

정부의 미약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아이를 낳으면 더 살기 팍팍해질 것이라는 가상의 두려움과의 쉐도우 복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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