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월 전에 갑자기 잘하지 않던 군것질을 시작으로 먹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다. 입이 짧아서 조금 먹는 편이라 음식을 남기기 일쑤였는데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 느껴졌다. 그 덕에 10kg가 쪘고 어지러움을 느끼고, 이석증 진단을 받고, 고지혈증 진단도 받고 갑자기 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먹는 것으로 헛헛함을 채운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렸고 생각은 끊이지 않고 그 생각은 상상으로 연결되어 마치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일어날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새로운 병원에 가서 지금까지 받았던 처방과는 다른 약을 받았다. 다행히 잘 맞아서 용량을 늘려 한 달째 복용 중이다. 이사 오기 전에도 한 병원에 정착하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이사 와서 더 많은 병원을 돌아다녔다. 약을 먹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면서 증상이 나타날 때면 기존에 갔던 병원이 아닌 새로운 곳을 갔다. 안 맞아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건 납득이 가지만 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들어 반복적으로 병원을 옮기곤 했다. 이제는 가서 내 증상을 말하는 것도 귀찮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까운 초진비.. 지금이라도 잘 맞는 약을 처방해 주는 병원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직접적으로 떠오르진 않지만 머릿속이 가득 차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느낌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히 나아진 것은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하지 않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혼자 걱정하는 별 일 아닌 일상의 문제들로 불안해하지 않으며 조금 단순해졌고 집중력이 좋아졌다. 책을 잘 못 읽는 편인데 이것도 꽤 좋아졌다. 그리고 신체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는데 약을 2주 정도 먹고 나니 괜찮아졌다. 갑자기 뭔가 하려고 하는 충동성도 줄었고 돈 쓰는 것도, 술 마시는 것도, 흡연도 많이 줄었다. 자책과 눈치 보는 것도. 그동안 정말 어떻게 산 건지 인생이 정말 피로하다.
자꾸만 내 상태를 말하는 것도 하나의 증상일까? 정신적 문제는 눈에 보이질 않으니 내가 이런 상태라고 이해를 받고자 말하는 경향은 확실히 있는 것 같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다음 주에 선생님께 여쭤봐야겠다. 말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만...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문득 '난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원래 그런 것은 없어. 잠깐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뿐 잘 회복하면 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특히 내 잘못은 정말 아니야. 천천히 나의 시간대와 속도를 찾으면 돼. 이미 해냈으니 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