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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쥰 Aug 28. 2023

우린 선처럼 가만히 누워 ①

정자매의 해외여행 편 - 베트남

 인생에서 친언니랑 단둘이 다녀온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베트남! 사실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단둘이 갔다는 것이 더 놀랍다. 물론 철저히 계획된 여행은 아니었고, 어김없이 나의 충동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언니가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아진 틈타 비행기 티켓 링크를 보내며 여행을 권유해서 동행하게 됨).


 그래서 이번 여행만큼은 언니를 카메라에 많이 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치 관찰자 시점처럼? 흐흐 즉 이번 포스팅은 언니 에디션.


 언니는 작년부터 뜨개질에 빠져있고, 평소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집순이 취미만 잔뜩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나와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 조합 괜찮을까 싶었지만 막상 언니를 데리고(?) 다녀보니 마치 내가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는 것이 가장 처음 든 소감이었달까. 그리고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와는 다르게 가족한테서만 느낄 수 있는 극강의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며.




  

 운전을 할 줄 아는 어엿한 직장인인 언니는 새벽발 비행기에도 쫄지 않고 공항까지 차를 몰았다. 무려 안개 주의보가 발령돼서 시야가 좋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새삼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됐을 때, 동네에서 가족들을 태우고 굉장히 느린 속도로 코너링을 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꽥 지르던 초보 시절의 언니가 떠올랐다. (우리 언니 성장했구나..!)


 3월 초의 새벽은 아직 겨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추웠다. 놀러 가는 곳이 더운 나라이다 보니 최대한 가벼운 차림으로 차에서 내린탓에, 금세 후회하며 덜덜 떨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전날까지는 분명 덤덤했던 감정이 무색하게 발걸음을 떼면 뗄수록 조금씩 설렘의 감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새로운 조합과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감!


 저가항공사 비엣젯항공 ¹에 체크인 후, 아부지의 담배 심부름 외에는 별다른 쇼핑도 없이 우린 얌전히 비행기를 탑승했다. 새벽 비행기는 몇 번을 타도 편할 리가 없어서 뒤척이는데, 내 옆좌석의 그녀는 공책을 꺼내 들고 사사삭 뭔갈 그리기 시작했다. 궁금하지만 괜히 뭐 그리냐고 물어보긴 머쓱해서 안 보는 척 슬쩍 구경했다.


 다른 사람들은 wifi로 미리 영화나 드라마를 담아 오거나, 음악을 다운 받아오면서 어떻게 해서든 무료한 비행시간을 채우려고 하는데, 언니는 여전히 참 아날로그식이었다. 근데 그것조차 참 멋진걸?


 별 탈없이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커피라는 교집합으로 단합하여 콩카페를 뿌셨고, 반미 맛집도 차례대로 뿌숴(?)나갔다. 조금 놀랐던 부분은 네일샵을 예약할 때 언니가 별 관심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행 가면 네일 받고 예쁜 손톱으로 인증 남기는 건 필수지~"라고 흔쾌히 맞춰주어서 놀랬다는 것.


 남들은 그게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진을 잘 안 남기고, 인스타도 안 하고, 어디에 포스팅도 잘 안 하는 것 같은 언니의 입에서 나온 그런 말은 나에게는 조금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어딘가 나를 위한 배려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면서..



 괜히 바닷가에 앉아서 잠시 멍도 때리고, 거의 온종일을 나트랑의 시내를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발이 조금 아파왔지만 그래도 마냥 좋다며 우리는 그 흔한 그랩 한 번 안 타고 온 동네를 다 걸어 다녔다. 해외여행치고는 거창한 무언가는 없는 첫날이었지만, 앞으로의 많은 나날들에 이런 자매끼리의 추억들이 곳곳에 끼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날이었다.


 가끔씩은 가족이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냥 필요에 의해 같은 공간을 쉐어만 하는, 쉐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땐 헉- 하고 놀라며 이런 작은 조각들을 수집해 본다. 친구들에게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고 소중한 날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사실 가족들에게도 그런 노력과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조금 일찍 깨달은 편인 걸까?


to be continued...



* 비엣젯항공¹: 저렴하지만 권하진 않겠다. 돌아오는 시간대를 잘 못 결제한 언니는 시간을 바꾸려고 계속 연락했지만 결국 바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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